교황 담화

2009년 성소 주일 교황 담화

등록일

2009.04.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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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제46차 성소 주일 담화

(2009년 5월 3일, 부활 제4주일)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한 신앙과 인간의 응답



    사랑하는 형제 주교님들과 신부님들,

    형제자매 여러분,


    2009년 5월 3일, 부활 제4주일에 거행될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대한 성소 주일을 맞아, 저는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한 신앙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찰해 보도록 권유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8)고 하신 권고는 지금도 교회 안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절박한 요청은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소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기도로 활력을 얻을 때에만 “하느님의 섭리에 언제나 더욱 큰 믿음과 희망을”(「사랑의 성사」, 26항) 둘 수 있습니다.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대한 성소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과 전 인류를 위하여 마련하신 위대한 사랑과 구원의 계획에 속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탄생 이천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 동안 우리가 특별히 기억하는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3-4). 보편적 성화 소명에서 특기할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먼저 선택하시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서 따르게 하시고, 그분에게서 특권을 받은 봉사자요 증인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이신 스승께서 친히 사도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마르 3,14-15)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그들대로 다른 제자들을 주위에 모아 이러한 사명의 충실한 협력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성령의 활동에 순응하면서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사제들과 봉헌 생활자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을 위하여 온전히 투신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당신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세계 일부 지역에서 우려되는 사제 부족으로 교회가 나아가는 길에 어려움을 겪고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시간의 행로를 따라 하느님 나라의 최종 완성을 향하여 굳건히 교회를 이끄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심을 우리는 굳게 확신하며 힘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문화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자유로이 선택하시어 자비로운 당신 사랑의 신비로운 계획에 따라 당신을 따르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째 임무는 가정과 본당, 운동 단체와 사도직 단체, 수도 공동체와 교구 생활의 모든 영역을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도록 끊임없이 간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전체가 하느님께 대한 신뢰 안에서 성장하여,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구원 사명을 위해 그들의 삶 전체를 기꺼이 당신께 바치고 더 가까이서 당신과 협력하도록 끊임없이 요청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한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주의 깊게 경청하고, 신중하게 식별하며, 헌신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느님의 계획에 매달리고, 사제 성소와 수도 생활 성소의 고유한 실재를 깊이 연구하여 책임감과 확신을 가지고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주도적 부르심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 요구된다고 올바로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그 계획에 협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응답이며, 주님의 주도적인 사랑의 부르심을 받아들인다는 응답이고, 또 부르심 받은 사람에게는 구속력 있는 도덕적 요구가 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봉헌이 되며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실행하시는 계획에 완전히 협력한다는 응답입니다(2062항 참조).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기꺼이 내어주신 아버지의 행위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잔’을 남김없이 비워버릴 준비가 되신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순종하는 자세(마태 26,39 참조)를 숭고하게 드러내 주는 성찬례의 신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인간의 응답”을 만들어내고 가치를 부여하는지 즉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 구원을 위한 사랑의 계획을 완성시키는 완전한 선물인 성찬례에서,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기꺼이 바치십니다. 저의 전임자이신 사랑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다른 여러 선물 가운데 매우 값진 하나의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분 자신, 곧 거룩한 인성 안에 계신 그분 자신의 선물이며, 당신의 구원 활동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11항).


    사제들은,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세세대대로 이 구원의 신비를 영구히 지속시키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사제들은 바로 성찬례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자유로운 주도적 부르심과 그리스도의 충실한 응답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소의 대화’에 대한 탁월한 원형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찬례 거행에서 행동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께서 봉사자로 뽑으신 사람들 안에서 행동하시는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응답이 그들의 모든 두려움을,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인간적 나약함(로마 8,26-28 참조)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거나 가장 쓰라린 오해나 모진 박해를 받을 때(로마 8,35-39 참조) 경험하는 두려움마저도 없애주는 신뢰와 감사의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신자들과 특히 사제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 받고 미사 때마다 그 사랑으로 자양분을 얻는다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자기를 버리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구원 계획에 협력하게 됩니다. 그럴 때, ‘부름 받은’ 사람은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이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열매를 맺는 대화가 시작되고,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과 사랑으로 응답하는 인간의 자유가 신비롭게 만나, 영혼을 울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하느님의 주도적인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을 엮어 주는 이러한 사랑은 봉헌 생활에 대한 성소에도 놀라운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정결, 청빈, 순명의 복음적 권고는 주님의 말씀과 모범에 토대를 둔 것이며, 또 사도들과 교부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학자들과 목자들이 권장하는 것으로, 교회가 자신의 주님께 받아 주님의 은총으로 언제나 보존해 오는 하느님의 선물이다”(교회 헌장, 43항).


    예수님께서는 신뢰를 가지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따르시는 모범을 보여주신 분으로서, 봉헌 생활을 하는 모든 이가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첫 세기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이끌려 가정과 재산과 물질적 부요, 인간적으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기꺼이 그분을 따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들에게 뿌리 깊은 성덕을 가르쳐 준 복음을 실천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복음적 완덕을 향한 그와 같은 힘든 길을 걷고 있으며, 복음적 권고의 서약을 통해 그들의 성소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관상 수도원이나 수도회, 사도 생활단에 몸담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증언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늘 나라에서 온전히 실현되기를 기다리지만 이미 역사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봉헌 생활」, 1항)를 깨닫게 합니다. 


    누가 감히 자신이 사제 직무에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누가 자신의 인간적 능력에만 의지하여 봉헌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먼저 부르시고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진 탈렌트를 땅에 숨겨 버리는 게으른 종의 겁 많은 이기심을(마태 25,14-30 참조) 결코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응답은, 밤새도록 애썼어도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믿고 망설이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그물을 던진 베드로처럼(루카 5,5 참조), 주님의 권유를 즉각 따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책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인간이 하느님께 자유로이 응답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지는 ‘공동 책임’이며,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과 이루는 친교입니다(요한 15,5 참조). 


    하느님의 주도적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신뢰 가득한 전형적인 대답은 바로 나자렛의 동정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천사가 알려준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획을 겸허한 결단으로 받아들이면서 말씀하신, 아낌없이 바치는 완전한 ‘아멘’입니다(루카 1,38 참조). 동정 마리아의 즉각적인 “예”는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처음에 하신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씀을 이후에도 여러 번 되풀이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최후의 순간에도, 요한 복음사가가 말한 대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서” 무죄한 당신 아들의 끔찍한 고통에 함께 하셨습니다. 바로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그분을 어머니로 주셨고, 그분께는 우리를 자녀로 맡기셨습니다(요한 19,26-27 참조). 마리아께서는 특히 사제들과 봉헌된 사람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달아 직무 사제직이나 봉헌 생활의 길로 들어서는 모든 사람을 그분께 맡겨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시련과 의혹 앞에서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믿고, 충실히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과 이루는 내적 일치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믿음 때문에 모든 세대가 행복하시다고 일컫는(루카 1,48 참조)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영적 활력을 모두 쏟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는 일에 투신하고, 그분처럼 여러분 마음에 그 이름도 거룩하시어 “큰일”을 하시는(루카 1,49 참조) 전능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흠숭할 수 있는 힘을 기르십시오.  



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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