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데이 도눔 50주년 행사 국제대회 강연 2.
라틴아메리카에서 ‘피데이도눔’에 대한 보고
피에트로 사르토렐 신부 / 브라질에서 볼차노교구의 ‘피데이도눔’ 사제
서론
라틴아메리카에서 ‘피데이 도눔’에 대한 보고를 준비하라는 임무를 받고, 교구에서 파견된 많은 선교사들(사제들과 평신도들)과 여러 해를 지내면서, 뿌려진 씨앗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시는 성령의 숨은 은총을 드러내는 선교사들의 봉사를 전체적으로 완전히 보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오한 신학적 성찰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과 수십 명의 선교사들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가난한 이들에게 선포되었다.”(루가 4,19-21 참조.) 하신 복음 말씀의 실현을 보고 손으로 만져보면서 확인하는 데서 생긴 열정과 아름다움을 전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교회의 경험은 이러한 경우에 한정되고 폐쇄된 경험이 아니라 성찰해야 할 공간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교회 보편성의 표징이 되기 위하여 “파견된 이로 자각한다.”라는 이 대목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신앙의 선물」, 18항에서 “모든 주교는 사도들의 합법적 후계자들이며, 이러한 책임으로 다른 주교들과 함께 교회의 사도직 직무를 맡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선교는 “모든 민족들을 ……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있겠다.”(마태 28,19-20)라는 주님 말씀을 포함합니다. 우리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은 우리 자신들을 자매교회에 특별히 봉사하는 교회의 선교 표현으로 자각합니다. “피데이도눔 사제들은 교회들 간의 친교의 유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 공동체들의 성장에 귀중한 기여를 하고, 다른 편에서는 여기서 신선하고 활기찬 신앙의 힘을 얻는다.”
파견하는 교회 쪽에서도 파견 받는 교회와 복음적이고 사목적인 대화를 위해 ‘전환’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기에 양쪽 모두에게 우리는 친교와 전달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세례 받은 이들입니다.
- 세례 받은 남녀로서 친교와 선교의 장을 만들기 위해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경험을 통해 두 교회의 복음적 성장, 봉사, 만남의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 세례 받은 이는 자매인 교회에 봉사하면서 자신과 신앙 안에서 선사받고 성숙시킨 자신의 고유한 선물을 자매 교회에 봉사하려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봉사는 맞이하는 교구의 인간 발전과 사목 계획에 겸손하고 정중하게 합류함으로써 성숙하고 향상됩니다.
우리는 이런 요청을 받습니다.
-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의식하는 내적 분별력을 키우고, 좋은 경청 자세를 점진적으로 획득하며,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행의 동반자는 서로 주고받습니다.(시노도 : 여정의 동반자인 교회, 213-216, 24-253항)
- 불의와 가난을 비롯한 인간의 여러 다양한 조건에 함께 하면서 교회들 사이에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과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의 선택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그리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자리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시노도: 외향적인 교회... , 220항)
- 검소한 생활양식을 지니며, 자연 보호와 생태학적 임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소비가 증가하는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과, 발전을 유지하는 형태가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시노도: 불안한 세상... 155항)
- 선교의 보편적 차원을 설명하고 양육하는 것을 계속하며, 귀국 후 필요한 부분도. …… 공동체를 더욱 활기 있고 선교적으로 만드는 복음화된 평신도들과 사제들이 되도록 우리를 고무시키는 한 차원은 더욱더 계속되고 많이 양성되어야 하며, 이러한 양성에는 성사들, 교리교육, 사목적 활동, 인간 발전, 교회 간 대화와 교회일치운동, 토착화 등이 포함됩니다. 이탈리아교회의 겸손한 봉사자들과 신자들은 모든 모범적 행동으로 선교를 계속합니다.(시노드 : 증언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 258항)
그러므로 이것은 근본입니다.
- 교구선교센터와 함께 결합하여, 지역 교구 사제로 편입되고 ‘동행자로서’(팀 구성으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 맞이하는 교회에 편입되기 위해서 모 교회로부터 파견된다는 것입니다.
- 모든 긴 여정(준비 기간, 다른 교회에서 봉사 기간, 교구에 귀국 등)을 분별하고 수행하고 확인하는 객관적 원칙들을 가진 기획자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어려운 상황에서 생명을 감싸 안는 하느님의 말씀, 복음 선포, 선교 모습을 보여주는 제자다운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시노도: 제자다운 교회 206-207항)
비토 델 프레테 신부는 피데이도눔 50주년 행적에 대한 보고에서 이러한 인식을 재확인하였습니다. “파견되는 이들이 그를 보내는 공동체의 선교 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항상 고무되어야 합니다. 공동 선교 기획을 위해 다른 교회에 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제들은 물론 그들 사제관과 공동체에까지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특징은 피데이도눔과 선교 수도회를 구별하는 요소들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 간 선교 협력이라는 복음화 시각 아래 사목 지침의 윤곽을 그리도록 주교회의를 자극하고, 그들 교회의 선교 의식을 참으로 장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화와 성사, 친교와 선교 공동체, 자비의 복음, 변하는 세상에서 복음 선포, 피데이도눔과 선교 수도회에 대한 모든 사목 지침과 함께 …… 등등 국가, 지역, 교구, 본당의 차원에서 선교 봉사와 구조의 기관들은 피데이도눔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들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교회 교구들은 교구 신자들이 선교를 위해 떠나도록 장려하는 선교 책임을 적극 실감하고 있습니다.”
약사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활동하기 위해 떠난 피데이도눔 이탈리아인들,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신학생들의 아주 중요한 여정을 상기해 보는 것이 정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모든 교구에 자극이 된 이 경험은 깊은 영성의 동기와 피데이도눔 선교를 위한 큰 원동력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교통일센터’(CUM : Centre Unitario Missionario)에서 소개한 사례들을 보겠습니다.
1961년 베로나교구 신학교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사도직을 준비하기 원하는 이탈리아 신학생들을 위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신학 과정”이 개설되었습니다. 1962년 요한 23세는 이탈리아주교회의 의장에게 사제 파견을 위한 다른 형태들도 고려해 볼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1962년 11월 29일, 베로나에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신학교, ‘과달루페의 성모님’ 의 초석이 세워졌습니다. 1962년 12월 4일 이탈리아주교회의는 이탈리아교구들이 라틴아메리카의 교구들에 제공할 수 있는 형제적 도움의 다양한 형태를 연구하고, 장려하고, 배치하고, 인도하는 목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주교위원회’(CEIAL)를 구성하였습니다.
1963년에 라틴아메리카 교구에서 임시 직무에 적응하려는 교구 사제들을 위한 첫 번째 강의가 실시되었습니다.
1964년 11월 8일, 바오로 6세의 라디오 담화로 베로나에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신학교 ‘과달루페의 성모님’의 새로운 설립이 시작되었고, 이 신학교는 이어서 CEIAL의 기관이 되었다가 지금은 CUM의 기관이 되었습니다.
1966년 2월 CEIAL의 의장, 죠세페 카라로 주교의 특명으로 아르만도 오베르티 박사가 라틴아메리카 공동체에 이탈리아 평신도들의 파견을 지원하고 장려하기 위하여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평신도 운동’(MLAL: Movimento Laici per l\'America Latina)을 설립하였습니다. 1966년 7월 30일, 교황 비오 6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베로나의 라틴아메리카 신학교의 신학생 32명에게 신품성사를 수여하였습니다.
CEIAL에서 장려하는 라틴아메리카 선교 준비를 위한 4번째 강의와 함께, 다른 강의들이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인 평신도와 남녀 수도자들에게도 개방되었습니다. 1970년부터 라틴아메리카에 이탈리아인들을 동행하기 위한 조직적인 형태의 만남과 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몇몇 사제들은 자신들을 CEIAL 시작의 기점으로 여기고 ‘Ceial의 사절’ 모습을 띠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후, 베로나의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신학교와 함께 통일된 지침이 예상되었고, 라틴아메리카 주교위원회(CEIAL)에서 장려하는 전국사무처, MLAL, 강의 지침, 신학교, 등 모든 활동의 책임자를 세웠습니다. 신학교 학장은 페르난도 파바넬로 몬시뇰인데, 새 학장으로 발터 스트라파게티 경(주교)이 되었습니다.
1971년 11월 11일, CEI의 상임위원회는 CEIAL의 새 정관을 승인하였습니다. CEIAL의 이니셜은 이제 Centro Ecclesiale Italiano America Latina를 가리킵니다. 조직체는 교회들의 협력을 위하여 주교위원회의 감시 아래 라틴아메리카와 이탈리아교회의 공동 작업을 연구하고, 장려하며, 통합하는 의무를 가질 것입니다.
1972년 이탈리아 교구들에서 선교 의식이 증가하면서 교구에서 양성 교육을 마친 신학생들이 사제 수품과 몇 년의 사목 경험 후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특별 준비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베로나의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신학교는 신학생 수가 줄어든 상태에서도 사제성소의 선교 차원적 ‘표징’의 가치와 가족의 정신을 CEIAL에서 활발하게 유지하는 공동체로 개방되었습니다. 새 학장으로 로디교구의 올리오 드라고니 경(주교)이 임명되었습니다.
1975년 라틴아메리카에서 이탈리아에 일시적으로 귀국한 이들의 적응을 위한 첫 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CEIAS와 함께 공동 작업으로 후에 이 강의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귀국한 이들에게도 개방되었습니다. 1949년부터 우루과이의 베르가모교구의 실바노 베르란다 주교가 CEIAL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1970년 중반에, CEIAL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이탈리아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과 함께 연합의 수단과 홍보를 위한 정기간행물 ‘Noticeial ’을 출간하였습니다. 1977년, 선교에서 완전히 귀국한 이들(특히 교구 사제들)의 정기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978년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와 교회의 여정을 이탈리아에 알리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홍보 봉사’(SIAL : Servizio Informazione America Latina)가 개설되었습니다. 책임자로는 장피에로 모레 주교로 율리오 바티스텔라 주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1978년 4월, 이탈리아주교회의(CEI)는 교회 간 선교 협력을 위한 국내 사무처를 개설하였으며, 그 책임을 장바티스타 타르게티 주교에게 위임하였고, 그는 CEIAL와 베로나의 구조에 관련된 협력의 책무도 맡았습니다.
1985년 주교위원회는 CEIAL의 청원에 협력하기 위해, 국내 선교 사무처와 함께 협력의 유일한 중심으로서 CEIAL와 CEIAS의 조화를 가정하는 CEIAL의 정관 교정을 시작하였습니다. 1987년 실바노 베를란다 주교는 CEIAL의 학장직을 피렌체교구의 마리오 아자치 주교에게 위임하였습니다. 1988년 9월 이탈리아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교회 간 선교 협력을 위한 ‘선교통일센터’(CUM : Centro Unitario Missionario)를 구성하였습니다. CEIAL은 CUM의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부서가 되었습니다. 1992년 라틴아메리카 부서의 책임은 마리오 모리코니 주교와 마리오 알디기에리 주교가 맡았습니다. 1996년 리미니 교구의 알도 폰티 주교가 모리코니 주교의 자리를 이었고, 1999년 마르티노 자고넬 주교가 알디기에리 주교의 자리를 이어갔습니다.
이제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 부서는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위원회로 명명되었고, 학장 마우리지오 쿠콜로 주교에게 배정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부서는 무엇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선교사들을 동행하고 준비시키는 데에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소개된 프랑스, 스페인, 독일, 몰타 섬에서 실행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슷한 단체들도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폴란드교회의 피데이도눔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피데이도눔
“진실로 신앙은 예수님 안에서 단지 진실만이 아니라 참 아드님을 보게 하고, 말씀 자체에 다른 모든 지성과 말들이 집중되며, 비그리스도인들에게 거만스런 억측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것처럼 무상으로 우리가 다시 분배할 수 있도록, 마치 우리 능력의 결과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한 말씀과의 만남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일 뿐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하느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셨고, 다른 이들과 모두를 위해 그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경건함을 가지고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에 대하며 말하면서, 단지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보잘것없는 전달자들로 자각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파견된 선교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나의 문화와 이념에 복종시키면서, 영적 식민주의를 표명할 수 없습니다. 선교의 모범은 특별히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을 선포하러 파견하는 연설에 분명하게 표시되었습니다.
선교는 먼저 순교할 준비가 된 조건을 요청하고, 진리 사랑을 위해, 다른 이들의 선을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요청합니다. 그때에만 선교는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요셉 라칭거, 「부활하신 예수님께 향한 길」(In cammino verso Gesu risorto)
라틴아메리카에서 일했던, 그리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수백 명의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을 고무시키고 활성화하는 영성의 한 부분이 된 이 말씀들을 분명히 우리 것이 되게 합시다.
이 기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피데이도눔의 현존 방식이나 인원수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60년대 초반은 첫 번째 피데이도눔이 희생과 후원의 큰 정신으로 조금은 지역의 ‘탐험가’들처럼 출발했었고,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무엇보다 이러한 선교의 형태를 생활하고 확인한 교황 요한 23세의 촉구 아래 수많은 선교사들이 출발하였습니다. 70년대 중반까지 라틴아메리카에는 많은 피데이도눔이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 독일 그리고 스페인, 또 북아메리카(특히 스페인 언어권 지역에서) 교회의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이탈리아 피데이도눔 선교사들도 오기 시작했고, 그 다음 폴란드에서도 오기 시작했습니다. 틀리지 않다면, 이 시기는 선교사들의 최고 정점을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해 동안 현존의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맞이하는 교회의 사목 계획의 개량과 가난한 이들의 세상에서 강생(구체화)을 찾으면서, ‘전반적인’ 사목을 책임지면서, 특히 ‘본당’과 같은 지역 교회 안에 개입하였다면, 지금은 무엇보다 ‘사회 사목’과 양성의 범위에서 그리고 지역과 국가의 범위에서 더 소외된 기획 봉사에 전념하면서 특별한 사목의 형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구에서 라틴아메리카에 파견한 이들의 수가 증가하였으나, 이들은 지역 교회의 기획과 교계제도에 여러모로 투입되어, 고유하고 특별한 활동을 통해 ‘운동’ 기획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단지 수적으로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와 주교들의 평가 결과에서도 이 보고는 온갖 형태의 폭력 아래 있는 이 민족들의 자유를 향한 도상에서 교회의 정치적, 예언자적, 복음적 책임을 맡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든든한 도움이 되고, 교회가 성장하는 데에 모든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의 지역 교회들을 위한 더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의 국민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현존에서, 복음에서 그들의 충실함을 생명으로 지불한 피데이도눔 순교자들을 묵념해야 합니다. 강생이란 단지 많든 적든 신학적 의미의 말씀만이 아니라, 온전한 자기 증여와 사랑으로 생활하는 데 따른 생명, 죽음 그리고 부활- 부활의 선포 -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증거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에는 이탈리아 피데이도눔 선교사 360명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주교로 임명된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은 제외하고(브라질에만 적어도 10명의 주교들이 있다.), 평신도 10명을 포함한 230명이 브라질에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의 경험과 구체화의 표징으로서, 우리는 브라질에서 이탈리아 피데이도눔의 보고에 대한 ‘전국 교회 포럼’(2002년 1월 28일-2월 4일) 동안, 그리고 베로나교회의 시노드와 2006년 1월 브라질의 바이아 살바도르에서 개최된 이탈리아 피데이도눔의 라틴아메리카의 만남 동안, 피데이도눔 사제들이 강조했던 몇 가지 양상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라틴아메리카와 캐리비안의 교회와 국민들과 함께한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개별적 증언들에서) :
- 각 개인에게 가져야 할 관심과 고려,
- 생명의 학교는 아카데미 교육에서 준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자격증을 주었다. 고통과 어려움은 성숙하게 하며, 생활의 스승이다.
- 내 영성에서 중요한 변화는 목자의 마음으로, “사제”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이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고, 자신을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게 하였다. 모든 것이 심오하게 인간적이었고 그리스도적이었다.
- 기도는 생활 안에 있어야 하고, 생활은 기도 속에 있어야 한다.
-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을 배웠다.
- 가능한 더 넓은 인식에 도달하고자, 다른 점을 이해와 인내심으로 표현하는 것을 찾으면서, 공동체와 개인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을 배웠다.
- 분쟁은 친교의 결핍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더 좋은 친교를 형성하려는 바람으로 본다. 변화의 필요를 설명하고 용서와 자비의 연습을 강조한다.
- 개인적 성화 이상으로, 우리는 사목적, 공동체적, 정치적 성화를 건설하기 위해 지금의 현실과 교회에 도전한다.
- 가난한 이들이 가난한 것은 불의한 제도가 “만들어낸 가난한 이들”이기 때문이라는 “발견”은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란 정의의 문제이다. 가난한 이들은 복음화의 대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무엇보다) 우리의 전환을 위한 복음화의 주체이기도 하다.
- 우리의 교리교육은 “누가 하느님이신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함께 발견하는 데 있다.
- 공동체는 우리에게 성경을 읽는 새로운(아주 오래된)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였다. “예비-원문, 원문 그리고 문맥 관계”의 세 가지 각도와 네 가지 시각의 유명한 방법론은 사람들의 생생한 환경에서 강생한 기쁜 소식의 메시지처럼 복음을 다시 읽도록 도와준다.
-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교회에서 봉사하고 사랑하는 자유를 사는 것을, 두려움을 초월하는 것을(구약과 신약에서 우리는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하는 구절을 수없이 만난다.) 배웠다.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의 길로(오늘날 빗나간 방법처럼 보이는 말씀) 인도하시고, “잃는 자가 이긴다.”는 확신을 주신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 우리는 평신도들의 참여와 노동의 가치를 높이 사면서, 더 공동체적이고, 참여적인 교회를 건설하는 것을 배웠다.
- 성체성사는 공동체 성장의 효과적인 순간이 되었다.
다른 교회들로 향한 라틴아메리카의 피데이도눔
이러한 점에서 회칙, 「신앙의 선물」(피데이 도눔)은 라틴아메리카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실이지만 브라질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기억할 만합니다. 푸에블라에서 저는 모든 개별 교회들이 ‘만민 선교’ 복음화를 위한 공동 책임을 느끼면서 아주 강한 부름을 받았고, 오늘 우리는 사도적 봉사를 이행하는 아프리카와 브라질의 여러 지역 교회들을 위하여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양한 교구의 선교사들입니다. 대략 계산해서 우리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이 50명 정도(브라질에는 30명)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작은 숫자이지만, 항상 “도움을 받는” 데 익숙했던 이 교회들이 가난 속에 있을지라도,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들 자신을 바치고, 나누는 것에 열려있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친교의 확인에서만이 성령께 자비로써 이 교회에 응답하는 힘을 줄 수 있습니다.
평가와 전망
선교 봉사에서 이 50년의 평가는 현저하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1월에 개최되었던 포럼의 마지막 자료 부분을 다시 보겠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이 기간 피데이도눔의 희망으로 피데이도눔 선교사들 대부분이 살았던 지속적인 몇 가지 체험들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 민중의 생활과 성경에서 진실하고 대중적인 방법으로 배운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내린, 신앙의 깊은 체험.
- 구조적 취약 상태에 있는 지역 교회의 생생한 사랑.
- 다르지만 항상 특권적이고 건설적인, 상황과 장소에서 부과된 모든 다양성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견해.
- 가장 문제가 많은 농촌 지역의 초기 봉사에서 새로운 도전과 양성을 위한 더 큰 감수성으로 도시적인 사목으로의 전환.
- “그들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세례자 요한의 모범을 기억하며 지역 교회의 성장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봉사.
- 모범적 영성은 직무 생활에 더 나은 일치와 기쁨을 주었다.
- 이탈리아 교구들의 선교 활력의 증가는 선교사를 방문하러 오는 사람들과, 무엇보다 새로운 감각을 찾는 젊은이들 사이의 교류를 조성하였다.
피데이도눔 선교의 계승을 위한 몇 가지 구체적 도전들
- 사제들 간에 그리고 평신도들과 함께 참여와 친교를 발전시키며 우리의 직무 봉사를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 “파견된 이”들의 봉사의 “양”에서 “질”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보내는 교구와 받아들이는 교구)에 대한 사목연구기획을 가지고 와서, 팀으로 일할 줄 아는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파견을 전제한다.
- 출발하는 교회(a quo)와 도착하는 교회(ad quem)의 교회들은 그 구성원들과 함께 진정한 우선권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 협동 기획을 더 성찰해야 한다.
- 종교적, 사회적 다원론이 많은 세상에서 ‘사마리아인’의 자세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용과 대화에 열린 사람들이 필요하다.
- 큰 문제는 지역 조직체와 삶의 새로운 양식을 가르치지 않고, 잘못 사용되어 주는 이와 받는 이를 부패시킬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다.
이 변화는 누가 발전시키고, 수행할 수 있는가?
첫 번째로 (이탈리아의) 지역 교회들이 교구선교센터(CMD: Centri Misssionari Diocesani)를 거쳐 (베로나의 CUM과 함께 협력하면서, 그리고 전국선교위원회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지역 차원에서 강조될 수 있습니다. Missio의 설립은 모든 이탈리아교회의 이름으로 다수의 협력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교구들가 강조한 요소들, 가장 작은 것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급속한 변화는 피데이도눔을 파견하고 맞이하는 교구들 간의 협력 기획을 더 연구하고 분석할 필요를 느끼게 있게 합니다. 체류에서 귀국까지 선교사는 파견하는 이와 함께 해야 하며, 파견하는 이와 같은 배려로 대해져야 합니다.
잘 연구된 기획을 통해, 변화를 실현하는 두 교회가 초기 기획의 재적응을 유발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일시적인 새로운 상황들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 기획들에서 피데이도눔의 체류 기간과 봉사의 형태가 예견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친교와 교류의 고유성은 출발하는 교회(a quo)는 도착하는 교회(ad quem)의 개인과 단체들을 피데이도눔 파견 이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동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어떤 기준들로 파견과 귀국을 기획하는가?
이미 상기하였듯이, 파견은 두 교회가 연구하고 정의한 기획 안에서 추진되어야 합니다. 체류하는 기간은 목적에 비례해야 하며, 너무 짧거나 길지 않아야 합니다. 책임자가 참여한 가운데 기획의 기간별 평가와 개정이 실시되어야 합니다. 피데이도눔이 결정된 일을 가능한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데 적합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므로 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 효과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정보의 교류를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성찰들
가) 최근에는 사실 지역 교회에서 파견되는 피데이도눔의 수가 감소된 반면에, 선교 운동의 이름으로 출발하는 이들과, 대부분 그들 운동의 목적을 위해 일하려고 출발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들 이면에는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자국의 지역 교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선교 지역 교회의 내부에 진정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러한 인물들이 파견한 교구의 사목 방침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나) 파견하는 교회들은 선교에서 온 자극에 민감할 수 있고, 교회의 구조적 차원에서처럼 사목 차원에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 몇 해 동안 이탈리아교회의 사목 구조와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 그러므로 누차 이야기하지만 어려운 점의 하나는 피데이도눔 선교사의 귀향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귀국한 선교사의 적응력도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 다른 교회들에서 봉사 기간 후 교구에 돌아오는 피데이도눔 선교사들 그룹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선교 체험을 가치 있게 전하기 위하여 ‘귀국자’들의 모습을 잘 연구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피데이도눔을 파견하고 몇 년 뒤에 그들을 맞이하는 교회는 선교 영성 안에서 사목적으로 풍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 문화 간 대화, 그리고 종교 간 대화를 더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한 선교사목신학연구소가 필요할 것입니다. 현대 선교는 그 어느 때보다 대화에 열린 자세, 교회일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바) 지역 교회들과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은 어떻게 선교의 보편성을 발전시키고, 동시에 교구의 정신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 사제성소가 어려운 시기에, 복음화와 선교 일에 감동적인 참여와 조직적 양성으로 어떻게 평신도들에게 진정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까?
미래를 위한 길을 비춰 주시는 주님의 영을 부르면서 마칠까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러한 체험은 지역 교회 간 상호 협조와 친교의 표징, 말하자면 일치와 사랑의 표징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교회 생활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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