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데이 도눔 50주년 행사 국제대회 강연 3.
피데이도눔의 정체성을 재형성하기 위한
요소들과 양성 과정
허버트 부셔 주교 / 베들레헴 교구(남아프리카)
1.
이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피데이도눔’(번역의 주: 회칙 「신앙의 선물」을 중심으로 교구에서 파견되는 해외 선교 사제)의 정체성을 재형성하기 위한 요소들과 양성 과정”이라는 주제로 전개할 것을 요청 받았을 때, 2007년 1월 23일 주교회의 의장과 교황청전교기구 지부장에게 보낸 비토 델 프레테 신부의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 검토하면서, 서론 2항에서 대회의 동기를 설명하는 용기 있는 글을 확인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기에서 지난 50년 동안 ‘만민 선교’를 위해 교구 사제와 평신도를 계속 파견해 온 오래된 교회와 신생 교회들의 노력이 확인되었고, “이 양식은 점차적으로 선교 공동 책임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모든 교회는 선교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 ‘만민 선교’는 사실상 수도회 사제들과 선교사들에게만 위임된 것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라고 언급되었습니다.
2.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신앙의 선물」 끝 부분에만 조심스럽게 시작된, “사도좌와 함께 친교와 평화 관계에 있는 총주교들, 수석 주교들, 대주교들, 주교들, 다른 지역 사제들에게”라는 부분이 조금씩 규범이 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회칙에서는 “몇몇 주교들이 어떤 희생의 대가에도 아프리카의 사제로 배치하기 위하여 교구 사제들 한사람 또 한사람에게 출발을 승낙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당시 다른 이들처럼 주교의 승인을 받고 저에게 온 이에게 몇 달 후 사제서품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는 피데이도눔 사제로서 남-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고무시키기 위해 일 년 전에 교구를 떠나온 첫 번째 사제와 함께 실제로 선교사처럼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우리 교구의 본당에서 보좌로 근무한 세 번째 사제는, 우리 주교님이 그에게 “아프리카는 여기다!”라고 한 단호한 말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는 1955년 그와 함께 서품을 받은 피데이도눔 첫 번째 사제에게 합류하기를 요청하였고 그 답변을 받았습니다.
3.
개인적으로, 피데이도눔 사제의 모범이 교회의 만민 선교를 위한 규범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만민 선교를 위하여 준비하는 사제들의 양성 과정의 재구성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변경하면서(mutatis mutandis) 이는 평신도 선교사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에 평신도 선교사들을 따로 논하지 않고, 피데이도눔 사제의 유형에 대한 성찰로 제한하려 합니다. 저의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3.1.
선교 단체는 물론이고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신생 교회들에서 구성원들을 모집합니다. 특별히 수도회 선교사들은 수도회 창립 목적을 지속적으로 따르려는 의무감을 지닙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의심 없이 만민 선교를 이끌기 위해 계속 그들을 지원합니다. 원래, 그들 창립자들의 영성을 실천하는 이 수도회들은 시초에 운송 수단들과는 멀리 떨어져 공급물자와 필수품들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기반과는 거리가 먼 봉쇄된 채 설립되었고 동시에 자주 맹렬한 유행병의 충돌을 예견하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증가 추세에 있는 지구촌 세상에는 모든 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3.2.
그렇지만 저는 회칙 「신앙의 선물」 발표에서부터 지난 50년의 여정 동안 북반구의 교회에 충격을 주었던 사제·수도성소의 심각한 감소를 시인하면서도 요한 23세에서 요한 바오로 2세까지 우리 시대 근래의 교황들이 자주 호소한 새로운 선교 시대의 여명을 맞이하리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지역의 교구들은 불과 몇 세기 전부터 그들 본당에서 사제들을 제공하는 일이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데이도눔 봉사에도 부정적 반응을 가진 교구 사제직이 성소 감소를 유발시키는 복합적인 이유를 지니고 있습니다.
3.3.
물론 위로가 될 만한 현실은 있습니다. 남반구 지역 대부분에서는 성소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고, 이 지역의 교회는 특히 아프리카 대륙 몇몇 국가들에서 참으로 놀라운 숫자로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소의 봄날이 참으로 이 지역 교회의 수많은 사제들을 만민 선교의 열정적인 피데이도눔 선교사들이 되게 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문화적, 인종적으로 고유한 단체 내부에서 편안한 본당의 안락함을 누리면서 단지 본당이라는 사목지만 동경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유럽의 농촌 사목 유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관주의자로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오 12세부터 그의 동료 주교들까지 용기 있는 공동 협력을 위하여 시작한 이 미미한 노력의 봉사를 받으신 주님께서는, 지금 성소 계발을 위해 애쓰고 있는 신생 교회들에게 그 응답을 재촉하심으로써 몇 년 안에 큰 도움이 될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범이 미래 만민 선교의 규범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교도권의 계속적인 후원으로 남반구 신생 교회들 안에 피데이도눔의 열정적 선교사들의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리라고 희망합니다.
4.
어쨌든, 그 희망은 1990년 12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선교 교령’ 반포 25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하신 교회 안의 ‘부정적 경향’의 초래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였을 때만 실현될 것이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특별히 만민 선교에 직접적인 선교 활동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외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이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교회의 선교 노력을 약화시키고 이 사실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충격을 던져 주어야 한다. 교회 역사에서 보면 선교열은 언제나 교회 활력의 표지였으며, 반대로 선교열의 감퇴는 신앙 약화의 표지였던 것이다.”라는 본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찰 이전에 교황청은 회칙을 읽는 이들에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현 시대의 필요에 따른 교회의 생활과 활동을 개선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이는 교회는 본성상 선교라고 발표한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임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적 충동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깊은 본성에 속하는 것이요, 또한 교회 일치 운동을 자극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공의회 초 거의 30년 뒤, 교황은 이러한 선교적 비약이 오히려 무력하게 나타나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설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요인들을 언급하고, 그래서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서 제가 확인한 몇 가지 요소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5.
우리 가운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안 출현한 ‘다원주의’ 용어가 모든 세대에게 끼쳤던 유혹을 기억하면서, 그 결과를 관심 있게 주시하며 살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됩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교황 베네딕토 16세 담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대주의라는 이 용어가 뿌리내리기 좋은 비옥한 땅을 만들었음을 기억합시다. 당시 ‘서쪽’은 세속화로 빠르게 전환하고, ‘동쪽’은 전투적인 무신론의 특색을 띤 유럽에서 칼 라너가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말했을 때, 우리는 예언자적 현실주의를 경고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교회의 미래 모범이 되어야 했던 것은 아닙니까?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중요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는 몇몇 사람들이, 이제부터 앞으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불자는 더 나은 불자로 만드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임무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전환시키려는 것이 아님을 암시할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년)이 교회의 선교 활동에 미친 큰 영향력을 축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티칸에 교황청정의평화위원회 설립 후 발표된 회칙은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만들어내고, 인류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민족들 간의 새로운 형제애를 지원하였습니다. 회칙에서 교황청은 많은 선교사들에게 평신도이든 사제이든 결정적인 변화를, 복음의 우선적 선포에서 발전을 위한 일에 전심전력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발전은 곧 평화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니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누가 아끼려 하겠는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는 애절한 호소에 기꺼이 응답해 주기 바란다.”
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의 소제목은 교회의 “불변하는 선교 사명”입니다. 문헌의 서론에서 교황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과 교회에 속하지 않는 이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더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이후 거의 2배로 증가하였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년 뒤, 교황청전교연맹 사무처에서 “모든 민족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한 일치”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전교연맹과 함께 갑시다」(Vademecum della Pontificia Unione Missionaria)는 그해 선교 정관과 관련된 통계 자료를 다음과 같이 제공하였습니다. 세계 인류의 33%만이 그리스도인이며, 이 가운데 17.68%가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대륙별 신자들의 분포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프리카는 14% 이하로 나타났으며, 아메리카에 거의 64%가 집중되었고, 아시아에는 2.73%, 유럽에는 겨우 40% 이하이며, 오세아니아에는 26.5%입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에 “남방과 동방을 주시함”이라는 소제목의 항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거기서 교황은 ‘만민 선교’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므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기쁨과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도적 관심이 자기 신앙의 필수적 부분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비그리스도교 세계가 광막함을 볼 때에 우리의 선교 노력은 주님을 알리는 열망과 기근과 갈증이 되어야 한다.”라고 확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교황청전교연맹의 설립자, 복자 바올로 만나 신부에게 불굴의 노력을 가져다주었으며, “모든 방법으로 신앙의 선포를 장려하는 그들의 사명인 사도적 의무를 모든 교회에 이해시키고, 그들 주교와 사제들의 인도를 받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해시킬”(교황청전교연맹의 웹사이트) 것을 직접 당부하고 있습니다.
7.
그렇다면 피데이도눔의 미래 사제들의 양성 프로그램의 재구성을 위한 적절한 요소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선교 활동에 대한 모든 세례 받은 이들의 보편적 부르심에 비추어 무엇보다 먼저,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복음화의 선교를 완성하는 데 초대된 첫 번째 선교사들을 수용해야 하는 특별 양성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신학생 양성에서도 해당될 수 있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7.1.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2000년을 마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의 큰 기대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많은 상황들 아래서 현대 세계의 많은 이들이 교회 붕괴를 모색하려 했던 현실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회의에 동반되고 폐막 후에도 한동안 우세했던 열정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세상 끝까지 다니시며 세상에서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격려하셨던 노력에도 세상 대부분에서 지쳐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혀 공허하게(in un vacuum) 살지 않던 교회에서 최근 40년 동안 우리 신학교와 수도자 양성에 전한 양성의 특성에 영향을 주면서 교회의 표징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루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사랑하십시오,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외, “그것을 하라!”는 표어와 함께 “밖의 자녀들” 이 가운데 몇몇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서유럽 어디에서든 교육과 발전에서 반 권위적 경향과, 매체 세계의 거대한 전자 공학 발전의 반향인 프랑스 대부분의 도시들과 파리에서 일어난 “1968년 5월”의 사건들은 당시 한 학자가 “약한 세대”라 부르려 했던 현실을 출현하게 하는 몇 가지 기능들입니다. 청년 또는 성인 세대에게 생활의 첫 번째 목표는 모든 책임에서 최대한 벗어나면서 존재를 즐기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독일에서는 “놀이 사회”(Spssgesellschaft)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신학교 프로그램에서 고행을 언급하지 않으려 하고 엄격한 희생과 십자가의 신학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시기에 이 같은 현상이 많은 수도 단체에서도 발생하였고, 본당의 경우에는 거의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에서 견고하게 양성된 수많은 선교사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종결 후, 이미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교회가 공의회 자체를 완전히 체득하기도 전에 한 세대로 넘어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교와 수도자 양성소가 총체적인 개정을 시행하기 전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목적은 공의회 이후 교회와 신학에서 생산된 긍정적인 것은 보존하고, ‘공의회의 정신’이 왜곡되어 개입된 것은 제거하며, 동시에 같은 ‘정신’의 이름으로 억압된 모든 것은 개선하는 것입니다.
7.2.
본질적 특성들 가운데 하나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승인으로도 아주 나약해진 선교 표어가 교회에서 다시 일어날 때까지, 제 생각으로는 검증을 시도해야 할 세 가지 용어들을 지금 생각해 봅시다.
이 세 가지 용어들은 교회일치운동, (종교 간) 대화 그리고 토착화입니다. 저는 이 세 분야 어느 곳에도 전문가가 아니지만, 영국인들이 말하듯이 제가 관찰한 것과, 실천적이고 분주한 선교사 주교가 쓴 서신에 기초한 가치 있는 것들을 토대로 제 생각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7.2.1. 교회일치운동
과거의 좋은 일을 기억하는 우리 가운데 몇몇은 요한 23세가 아고스티노 베아 신부(나중에 추기경으로)를 오늘날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인 이 기구의 대주교로 임명한 1959년에 일어났던 열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58년 제가 도착한 남-아프리카까지 예고한 이 기구의 편리함은 아직도 개혁의 찬바람을 불어내고 있습니다.
이 평의회는 지난 몇 해 동안 우리의 많은 “갈라진 형제들”과 협력 관계를 설립하고, 교회 내부에 분열을 가져온 곤란한 신학적 질문들 몇 개를 제거하면서, 그리스도교 2000년대 초기와 500년 후에도 주목할 만한 업적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힘은 수많은 교회 단체들 안에서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점잖게 표현하자면,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소위 ‘교회의 원칙들’ 가운데 열거할 수 없는, 그리고 신생 교회들의 국가에서 출현한 그리스도인 요소들의 피상적 지식을 간신히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남-아프리카에만 6,000개 됩니다. 분명히, 남-아프리카에서 흑인 마을의 여기저기로 걸어 다니며 “잘못된 교회에 속하는 여러분 모두, 다음 주에 저의 교회로 오십시오. 가톨릭교회는 참으로 유일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선포하면서 20년대 첫 번째 가톨릭 선교사들 가운데 한분에게서 배운 선교 전략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구세주 주님의 뜻에 일치할 수 없으면서도,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진리에 일치하는 것처럼 방금 언급한 이 교회 단체의 모든 회원들을 수용하자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우리의 현 자세는 명백히 옳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학교들은 양성 기간 동안 이러한 행동을 심각하게 논의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사제들을 배출하여, 그 결과 이들은 그저 이 교회들의 한 구성원이 가톨릭 신자와 결혼할 때 발생되는 우연한 개종에 만족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여러분이 시간이 좀 있다면 제가 가져온 작은 책자를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이 소책자에는 저의 교구 사제들에게 선교 정신을 고무시키려는 의도로 2004년 교구 월간 회지에 실린 저의 의견을 적었습니다. 이 교회 단체들 또는 종파는 더 관례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교회의 모든 일치운동 노력에 효과적으로 스며들지 않는 반면에, 우리 수도회 회원들을 빼내려는 파렴치한 의도로 몰입하고 있습니다. 약하게 드러나는 우리의 종교 일치의 행동은 어쩌면 호교론 용어의 원래 의미에서, 공격적으로 말하지 않고, 우리 편에서 더 호교론적 위치를 차지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7.2.2. (종교 간) 대화
존중하며 사려 깊게 협력하는 대화에, 그리고 가톨릭교회와 다른 종교 추종자들의 협력에 대한 요청은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에서 기인하고, 이것은 한 기구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88년부터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로 알려졌습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이 평의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특권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문헌은 오히려 광범위하게 「대화와 선포」를 편집하게 되었고, 그 제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와 종교 간 대화에 대한 성찰과 방향”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1991년 성령강림절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출판은 5개월이 지난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출판 전에 승인되어 나왔습니다.
그와 같이, 이 출판이 교황청의 두 기구들의 보호 아래, 합동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문헌 서문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의 장관, 조세프 톰코 추기경과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프란치스 아린츠 추기경의 진술이 인쇄되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것입니다.
톰코 추기경의 진술에서 교도권의 표현인 「교회의 선교 사명」이 모든 교회에 베드로 직무의 권한으로 나아가는 반면에, 새 문헌인「대화와 선포」는 대체로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나 양성의 의무를 지닌 이들에게” 직접 해당되는 사목 지침이기에, 이 두개의 문헌들이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언제나 구원은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한다는 것과 대화가 복음화 의무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 그러므로 마땅히 교회가 구원의 정상적 방법이요 교회만의 구원의 방법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화를 추진하고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분명히 하였습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정당화를 모색하면서, 그와 같이 선교 선포가 계속 위협 받게 설정하는 상대적 이론의 처벌은 2000년 대희년, 신앙교리성의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에 관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출판으로 승인되었습니다.
선언은, 이 이론에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몇 가지 진리들을 나열하고,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갖는 결정적이며 완전한 성격, 타종교 신념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 영감을 통하여 이루어진 성경들의 성격,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 교회의 보편적인 구원 중개성, 등등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에 이어, 6개월 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교서, 「새 천년기」에서는 ‘대화와 선교’ 항목에서 「주님이신 예수님」을 분명하게 언급하였습니다. 교황청은, 안전한 평화의 바탕을 확립하고, 흔히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였던 끔찍한 종교 전쟁들과 같은 참상을 피하려면 종교 간 대화가 특히 계속되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교황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대화에 열중하면서도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분명하게 증언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1베드 3,15 참조). 모든 사람을 위한 선물, 그리고 각 사람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며 모든 사람에게 제시되는 선물, 사랑이신 하느님의 계시의 선물에 대한 기쁜 선포가 다른 사람의 신원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원문을 그대로 쓰고 종교적 무관심주의를 경계하였습니다.
선언 ‘우리 시대’에서 만난, 종교 간 대화를 부른 교회의 첫 번째 부름은 지난 40년 동안 엄청나게 분명하고 완벽해졌습니다.
바티칸의 다양한 문헌들, 특히 두 개의 인류복음화성 문헌인 1998년 발행, 선교 협력에 대한 지침인, 「선교 협력」과 1989년 발행 「인류복음화성에 소속된 교회 교구들의 사제들을 위한 사목 안내」에서 강조한 것처럼, 수도자들을 위한 양성과 우리 신학교의 경우에서도 내일의 선교사들에게 대화의 정확한 의미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될 것입니다. 이 두 개의 문헌들은 피데이도눔 사제들이 특별 활동을 받아야 하는 필요한 준비 단계에 있는 그들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현대 상황에서 사제의 양성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1992년)이 있습니다.
자신의 선교 표어를 되찾은 교회는 절대적으로 피데이도눔 회원이든, 선교수도회와 수도회의 회원들이든, 우리 미래의 선교사들이 필요합니다. 종교 간 대화가 좋은 단계에 관련된 반면에, 교회는 단호하게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모든 사람의 구원과 불가분리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임을 믿어야 합니다.
7.2.3. 토착화
지금까지 제가 인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모든 문헌들에 언급된 이 중요한 논증은 명백히 종교 간 대화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막 시작된 새 천년의 선교를 위한 양성 프로그램에서 특별히 관심을 부여할 몇 가지 부분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7.2.3.1.
흔히 토착화는 신생 교회들에서 지역 교회의 삶과 전례의 긍정적 요소들을 채택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 문화는 그 자신에 보편 교회가 수천 년 동안 많은 민족들을 거쳐 다른 문화들을 수용하면서 형성된 요소들로 더욱 풍요로워지려는 자세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방인 사제가 과거 오랫동안 식민지 권력으로, 그리고 최초의 몇몇 선교사들에게서까지 경멸과 절대적 압력을 받았던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대립되는 상황에서는 항상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복음과 민족 문화의 융합”이라는 소제목의 항목에서 이러한 관점을 많은 지혜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7.2.3.2.
토착화 운동에 관련된 얼마나 많은 것이 잘못되었습니까. 예를 들면, “나는 왜 세상에 왔는가? 왜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가? 왜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해 보이고, 반대로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잘못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무엇이 질병을 일으키는가? 죽음 다음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죽음 다음에 삶이 있다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인간 존재가 항상 고뇌하는 커다란 존재론적 딜레마에 토착화 운동은 이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고, 이러한 세상의 개념을 반영하는 통합된 제도, 의문을 지닌 민족의 종교적 신앙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 제도인 흔히 그들이 ‘문화’라 부르는 것을 효과적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동화의 나라에 관련된 환상, 마술, 마법이 있는 사회에서 온 선교사들은 이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발견합니다. 반면에 이 요소들은 토착신앙의 제도에서 발전되었고, 상술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포함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은 이것을 이교적이고 원시적인 “미신들”(rozze)처럼 예의바르게 다룹니다. 이 신앙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상태로 보존되며,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1열왕기 18장 21절의 표현대로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낮에는 그리스도인이고 밤에는 혼합적 이교의 비밀스런 회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7.2.3.3.
이러한 형태의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제들은 많든 적든, 토착화의 임무에 마주치는 순간을 대비해 어느 정도 무장되어야 하고, 항상 복음에 부합하고, 보편 교회에 일치한다는 포기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원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인들을 악화시키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신학교에서 그들 조상들을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리게” 만든 전해 내려오는 신앙의 제도와, 지금까지 전혀 접하지 않았던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던 사제들의 현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러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받아야 하며 성령의 칼인 그리스도의 힘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에페 6,17 참조.) 맞서고, 충만한 신앙으로 이러한 요소들을 다룰 줄 아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제들이 이러한 방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신학교 프로그램에 사회인류학의 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선 토착종교 신앙의 제도를 조직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예를 들면 사도시대에 전해졌던 선교처럼 마법, 마술, 조상 숭배 등, 관련된 원칙적인 요소들에 맞설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아프리카에서 사회인류학은 일종의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로서 그 역할을 어떤 형태로든 이행할 것이고, 일반 과정으로 교회가 사제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에서, 그리스-로마 세상의 견해에서 뿌리를 내린 이 문화적 보관물인 철학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나이로비의 동-아프리카가톨릭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조직한 심포지엄의 발견을 인용하면서, 올해 2월 21일자 서-아프리카 우리 교회의 간행물 첫 장에 보이는, “마법이 아프리카 교회를 뒤흔들고 있다”라는 제목을 읽는 것으로 시간 내에 마치려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천년기」40항에서 강조하였듯이, 명백히 복음의 가치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인 사회가 몇 세기 전에 복음화된 국가들에서조차 사라졌고, 민족들의 세계적 이주의 새로운 시기가 도래한 것처럼 보이는 여명기에는 종교적 다원주의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래된 전통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신학교들은 물론, 조금 전까지 ‘선교 지역 국가들’로 불렀던 신생 교회들 지역의 신학생들에게 특별히 제가 방금 인용했던 것을 적절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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