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성소 주일 교황 담화
등록일
200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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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제43차 성소 주일 담화
(2006년 5월 7일, 부활 제4주일)
교회의 신비와 성소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교회의 신비와 성소라는 주제에 관하여 성찰해 볼 것을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권유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3-5). 세상 창조 이전에, 인간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뽑으시어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와 함께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온전히 품어 안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바치신 사랑이신 아버지의 사랑의 신비에 우리를 함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머리이신 예수님과 일치한 우리는 한 몸인 교회를 이룹니다.
이천년 역사의 무게가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의 핵심인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매혹적인 신비의 새로움을 알아듣기 어렵게 만듭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 그것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페 1,9-10) 하고 바오로 사도는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29) 하고 열성적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형제자매로 살아가도록, 같은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다는 전망은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모든 생각과 계획을 완전히 뒤엎는 은총입니다. 참다운 신앙 고백은 인간 삶에 스며들어 있는 하느님의 무한한 신비로 정신과 마음을 활짝 열어 줍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 신비로운 계획에는 마음을 닫아버릴 정도로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매우 강력하게 파고드는 우리 시대의 유혹에 대하여 무어라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보여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 길을 따르고자 한다고 해서 이미 완전한 존재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화해하는 기쁨을 체험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더 잘 인식하게 해줄 경우,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바오로 성인은 바로 체험을 통하여 이렇게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 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합니다”(2코린 12,9).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그가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할 수 있게 합니다. 세기를 통해서, 수많은 남녀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봉헌하였습니다. 이미 갈릴래아의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 맡겼습니다. 그들은 몸과 영혼이 낫기를 바랐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 은총의 힘으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개별적으로 뽑아 사도로 삼으신 이들도 있었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순수한 사랑을 지니고 그분을 따라다닌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한 사도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마음속에 각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의 신비를 알게 된 이 남자와 여자들은 교회에 언제나 있어온 수많은 성소의 증가를 보여줍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이의 전형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신앙 여정 안에서 강생과 구원의 신비에 직접 참여하신 분이십니다.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놀라운 위업을 선포하도록,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을 이루는 것입니다(1베드 2,9 참조). 교회는 그 자체로 거룩하지만, 비록 그 지체들이 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인 이 성화는 교회 지체들 안에서 완전한 광채로 빛나게 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기 업적 때문에 하느님께 불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에 따라 부름 받고, 주 예수님 안에서 의화되고, 믿음의 세례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였기에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40항] 하고 단언함으로써 성화에 대한 보편적 소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편적 소명의 맥락 안에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염려하여 모든 세대에 걸쳐 사람들을 불러 당신 백성을 돌보게 하십니다. 특히, 사람들을 사제 직무로 불러 하느님 자신의 부성애를 원천으로 하는 아버지 역할을 수행하게 하십니다(에페 3,15 참조). 교회 안에서 사제의 사명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사제가 부족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젊은이들을 사제 성소로 부르시어 그들이 사도들처럼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오로지 거룩한 신비의 거행과 복음 선포와 사목에 헌신하게 하신다는 확신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의 존경하는 선임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직무 사제는 신비이며 친교이자 선교인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도유’와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기도와 말씀, 그리고 희생과 구원 행위를 연장시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또한 신비인 교회의 종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성사적으로 나타내는 교회의 표지들을 사제가 직접 거행하기 때문입니다”(16항).
교회 안에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는 또 다른 특별한 성소는 봉헌 생활의 성소입니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루카 10,39) 베타니아의 마리아의 모범에 따라, 많은 남녀들이 온전히 그리스도만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봉헌합니다. 비록 그들이 인간 양성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목, 교육사업, 병자 간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러한 활동들을 그들 삶의 주요 목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법전』에 잘 나타나 있듯이 “하느님의 사정에 대한 명상과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의 줄기찬 일치가 모든 수도자들의 첫째로 주요한 본분이어야”(교회법 제663조 1항)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교황 권고 「봉헌 생활」(Vita consecrata)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전통에서 수도 선서는 세례를 통한 봉헌의 특별하고 풍요로운 심화로 간주됩니다. 곧 수도 선서는 세례에서 이미 시작된 그리스도와의 긴밀한 일치를 복음 권고의 선서를 통하여 더욱 완전하고 명백하며 진정한 결합의 선물로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30항).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 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기억하며, 우리는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를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곳에 성소의 꽃이 만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성화는 근본적으로 신자들의 마음속에 작용하는 은총의 신비에 열려 있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 신비를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곰곰이 되새기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루카 2,19 참조) 당신 백성의 스승이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가도록 권고합니다. 교회 신비의 중심에 계신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우리 모두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시다.
하느님 아버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
풍성하고 거룩한 사제 성소를 불러일으키시어
말씀 선포와 성사 집전을 통하여
주님을 충실히 따르는 이들이
언제나 살아있는 믿음으로
성자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기억을 간직하게 하소서.
또한 저희에게 주님 제단의 거룩한 봉사자들을 주시어
진지한 열정으로
그리스도께서 세상 구원을 위하여 베풀어 주신
지고의 은총인 성체성사를 지키게 하소서.
주님 자비의 봉사자를 부르시어
고해성사를 통하여 저희가
주님 용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
아드님의 성령께서 불어넣어주시는 풍부한 생명을
교회가 기쁘게 받아들이고
아드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사제 직무와 봉헌 생활의 성소를 보살필 수 있게 하소서.
주교, 사제, 부제, 봉헌 생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봉사하며 자기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사도의 모후이신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바티칸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