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교 주일 교황 담화
등록일
200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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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의
제79차 전교 주일 담화
(2005년 10월 23일)
선교,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성체성사에 바쳐진 올해의 전교주일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당신을 세상에 내어주셨던 수난 전날 밤의 다락방의 분위기를 재현하면서 우리 삶의 ‘감사’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고린 11,23-24).
저는 최근 발표한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에서, 인류 전체를 위하여 ‘빵을 나누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도록 여러분에게 권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형제자매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우리 생명을 내어주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성체성사는 ‘보편성의 표지’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성을 나누어 받은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새로 태어나 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게”(선교 교령, 7항) 될 그 때를 성사를 통하여 예표합니다. 이렇게 성체성사는 선교의 의미를 더욱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우면서, 모든 개별 신자, 특히 선교사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이 되게 합니다.
‘나누어진 빵’인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인류
2. 오늘날 인간 사회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휘청거리고 자연 재해의 참사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어두운 그림자에 뒤덮여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잡히시던 날 밤”(1고린 11,23)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성찬례에서 “빵을 나누시고”(마태 26,26 참조) 모든 인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성사적 표징 아래서 당신을 내어 주십니다. 따라서 저는 “성체성사는 교회 생활에서 친교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한 연대의 계획”(「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27항)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성체성사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요한 6,33 참조)이며, 인간의 마음을 활짝 열어 커다란 희망을 품게 합니다.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마태 9,36) 가난한 군중을 보시고 연민에 사로잡히셨던 바로 그 구세주께서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인류에게 수세기 동안 끊임없는 연민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사목 종사자들과 선교사들은 구원의 ‘빵’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미지의 길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의 중심(에페 1,10; 골로 1,15-20 참조)”(「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6항)인 그리스도와 일치될 때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만 사랑에 굶주리고 정의에 목말라하는 인간의 갈망을 충족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만 모든 인간이 영원한 생명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나누어진 빵’이 되는 교회
3. 특히 주님의 날인 주일에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교회 공동체는 신앙의 빛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며, 성찬의 희생 제사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마태 26,28) 바쳐진 것임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피를 자양분으로 하여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선물’을 우리만을 위하여 간직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용감하게 선포하도록 하고, 그러한 선포는 순교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사랑의 최상의 봉헌이 됩니다. 성체성사로 우리는 더욱 정의롭고 형제애가 충만한 세상을 건설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투신하는 헌신적인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성체성사의 해를 계기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가난 가운데 하나라도 형제적 관심을 가지고”(「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28항) 대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요한 13,35; 마태 25,31-46 참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찬례 거행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28항).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인 선교사들
4. 오늘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하고 촉구하십니다. 전 세계의 선교사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합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하신 구세주의 말씀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집니다. 선교사들도, 때로는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면서, 그들 형제들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이 됩니다.
우리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하였습니까! 그들을 본보기 삼아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영웅적인 충성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교회는 복음의 대의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전교주일은 우리에게 지역 공동체와 여러 교회 기구들, 특히 교황청 전교기구와 선교회들이 수행하는 복음화 사명에 동참할 시급한 필요성을 일깨우는 좋은 계기입니다. 이러한 선교는 기도와 희생뿐 아니라 구체적인 물질적 봉헌으로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기회에 교황청 전교기구의 소중한 봉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여러분께서도 정신적 물질적 협력으로 이들의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다락방의 체험을 되살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참된 ‘가톨릭’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참된 가톨릭 공동체는 “그리스도와 이루는 긴밀한 일치”인 “선교 영성”(「교회의 선교 사명」, 88항)이 “성체성사의 여인”(「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3항)이신 성모님을 본보기로 삼는 “성체성사의 영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공동체이며, 성령의 소리와 인류의 요구에 언제나 깨어 있는 공동체이고, 신자들, 특히 선교사들이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나누어진 빵”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공동체입니다.
모든 분께 사도로서 축복을 보냅니다.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