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담화

2013년 성소 주일 교황 담화

등록일

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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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제50차 성소 주일 담화

(2013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



성소는 믿음에 기초를 둔 희망의 징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2013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에 거행하는 제50차 성소 주일을 맞아, ‘성소는 믿음에 기초를 둔 희망의 징표’라는 주제에 대하여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기쁘게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에 성소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공의회 기간 중에 하느님의 종 바오로 6세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 교회를 위하여 일꾼들을 계속 보내 주시기를 간청하며(마태 9,38 참조) 온 교회가 한 목소리로 기도하도록 성소 주일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때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충분한 사제를 확보하는 문제는 모든 신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줍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개별 본당과 교구 공동체들의 믿음과 사랑의 활력을 드러내는 명백한 표지이자 그리스도인 가정의 도덕적 건강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곳에서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가 많이 생겨납니다”(바오로 6세, 1964년 4월 11일 라디오 담화).


    그 이후 수 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교회 공동체들이 해마다 부활 제4주일에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성소의 은총을 간청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절실한 필요성에 대하여 함께 성찰해 왔습니다. 실제로, 이 뜻 깊은 연례행사를 통하여,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의 중요성을 신자들의 영성과 기도와 사목 활동의 중심으로 삼도록 하는 힘찬 노력이 이루어졌습니다. 


    희망은 미래에 어떤 긍정적인 일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은 불만과 실패로 얼룩진 우리의 현재 삶에 힘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닌 희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집트 탈출 때처럼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지속적으로 한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요소는 특히 예언자들의 글에서 발견됩니다. 곧 하느님께서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기억은 우리도 아브라함의 모범적인 자세를 따르도록 초대합니다. 바오로 성인이 일깨워 주듯이,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로마 4,18). 구원 역사 전체에서 드러나는 위안과 빛을 주는 진리 하나는 바로 하느님은 당신께서 맺으신 계약에 충실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대홍수 때부터(창세 8,21-22 참조) 이집트 탈출과 광야를 가로지르는 때(신명 9,7 참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불충과 죄악으로 거스를 때마다 그 계약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토록 성실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 외아드님의 피를 통하여 인간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모든 순간마다, 특히 가장 힘든 순간에, 주님의 성실하심은 언제나 구원 역사의 참된 원동력이 됩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언젠가 ‘약속된 땅’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으로 인간을 굳건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 모든 희망의 확고한 토대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당신 말씀에 성실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확고한 희망을 품고 시편 저자와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그분에게서 나의 희망이 오느니!”(시편 62[61],6) 따라서 희망한다는 것은 계약의 약속들을 지키시는 성실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희망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여러 구절들에서 ‘믿음’과 ‘희망’이 호환되어 사용될 정도로 ‘희망’은 신앙의 중심 단어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확고한 믿음”(히브 10,22)과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10,23)하는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의 의미이자 이유인 로고스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라고 권고할 때(3,15 참조), 이 ‘희망’은 ‘믿음’과 똑같은 것입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2항).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확고한 희망으로 따르는 하느님의 성실하심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 안에 부어 주십니다(로마 5,5 참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난 이 사랑은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충만한 삶을 위하여 무엇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응답하도록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흔히 인간이 결코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다가오지만, 언제나 그 사랑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이러한 확신으로 자라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16). 피상적인 것을 꿰뚫는 이 깊고도 벅찬 사랑이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이 사랑은 우리 삶의 여정과 미래에 희망을 줍니다. 이 사랑은 우리 자신과 역사와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도록 해 줍니다. 저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시는 세상 끝 날까지 인간을 돌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 희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산마리노 몬테펠트로 교구의 젊은이들에게 한 연설. 2011.6.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사실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 삶의 길을 함께 걸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갈망과 욕구를 지니고 자기만의 활동에 빠져 있음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살도록 부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희망에 대한 갈망을 채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 사십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당신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이러한 부르심은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뜻을 그분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그분에게 주도권을 드리고,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곧 가정과 일터와 개인적 관심사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과 관련해서도 그분께 첫째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 자체를 그분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매우 친밀하게 살며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친교를 이루고 결국 우리의 형제자매와 친교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이루는 이 친교의 삶은 우리가 희망을 체험하고 우리 삶이 충만하고 자유로워지는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는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에서 나오고, 또한 그분의 뜻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그분과 나누는 진지하고 확신에 찬 대화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 체험을 쌓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 깊은 데에서 들려오는 그분 목소리에 내적으로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도록 해 주는 이러한 과정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들은 활기찬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에 충실한 증언을 아끼지 않으며, 뜨거운 선교 열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온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게 이끕니다. 이 과정은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의 거행과 열렬한 기도 생활을 통하여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매우 개인적인 것, 곧 나의 자아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기도는 교회와 성인들의 훌륭한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올바로 기도하는 법을 계속 가르쳐 주고 계시는 전례 기도를 통하여 꾸준히 인도되고 빛을 받아야 합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4항).


    깊이 있고 꾸준한 기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고 사제직과 봉헌 생활에 대한 특별한 성소를 키우시어 당신 백성을 뒷받침해 주신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확신을 지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성소들이 이 세상을 위한 희망의 징표가 되게 하십니다. 실제로, 사제와 수도자는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사랑의 봉사를 하면서 하느님 백성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 때에만 생겨나는 그 확고한 희망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와 수도자는 신앙의 증언과 사도적 열정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 당신을 더욱 가까이에서 따르라고 부르시는 그리스도께 기꺼이 곧바로 응답하려는 강렬한 열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사제 직무나 봉헌 생활에 헌신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일 때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가장 성숙한 열매 하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에 힘입어 우리는 특별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교회의 미래와 그 복음화 임무를 바라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복음을 선포하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거행할 새로운 일꾼들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의 ‘인생 여정의 동반자’로서 젊은이들과 함께 할 줄 아는 열정적인 사제들이 부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힘든 굴곡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요한 14,6 참조)를 알아볼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도와주는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복음적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과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형제자매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젊은이들에게 말해 줄 사제들이 필요합니다. 열정적으로 헌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보여 주는 사제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헌신은 그들 자신의 삶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 참조).


    저는 또한 젊은이들이 피상적이고 덧없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과 숭고한 목적과 근본적인 선택을 하려는 갈망, 곧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이들을 섬기고자 하는 갈망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과 아낌없는 투신의 길, 힘들지만 용기가 필요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길에서 여러분은 섬김의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의 살아 있는 불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1베드 3,15)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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