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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과 선교, 강의 입문

등록일

2008.11.21

조회수

3,460

종말론과 선교

강의 입문

1. 선교 활동의 때

“선교 활동의 때는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재림 사이이며, 재림 때에 교회는 마치 수확물처럼 사방에서 하느님의 나라로 거두어들여질 것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선교 교령, 9항)
모든 민족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은 충만한 종말론, 바로 세상과 그 역사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나타남과 공현에 이바지하며 그것은 온 인류가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결합될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 3-4) 이것이 인간 역사의 목적이고,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진심어린 기도이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님!”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복음화 선교의 목표이다.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교회는 성부의 왕국을 향해 인류와 깊은 연대로써 나아가도록 촉구되었고(선교 교령, 1항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고 실현하신 구원의 메시지를 모든 이에게 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든 남자와 여자, 그들과 함께 세계는 변화되고 완성에 도달할 것이다.
교회의 선교와 존재는 진실로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인류를 위하여 세우신 계획 전체의 빛에 비추어서 이해하고 정당화될 수 있다. 교회는 왕국에 봉사하는 교회이고, 다가오는 하느님의 ‘미래’를 위하여 인류를 준비시키는 목적의 선교이다. 분명히 미래는 하느님 자신이시기에 선물이며 은총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적 운명은 이 지구 역사의 종말에 인류 전체가 무엇이 될 것인지 이미 겪으시고 많은 형제자매들의 맏이이시며, 이미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각인되었다. 모든 것이 하느님 사랑의 결실, 인류 희망의 결실이다.
복음화하는 선교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하느님 사랑에서 흘러나오고, 확실한 희망으로 충만하며, 교회가 이 땅의 민족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봉사이다.
‘종말론과 선교’라는 이 강의는 그 종말론적 차원에서 선교 활동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며, 이것은 교회 활동을 일치시키고 자격을 부여하는 요소들이고 특별히 만민 선교의 요소들이다. “종말론의 과업은 이 모든 전망을 함께 가져오는 데 있고, 그래서 개인과 공동체, 현재와 미래가 그 일치 안에서 보여 지는 것이다.”(요셉 라칭거, 「종말론, 죽음과 영원한 생명」(Eschatology, Death and Eternal Life) ) 사실상, 그것은 하느님의 신비 전체의 개념을 재발견하는 데 긴급한 필수요건이고, 그 종말론은 그리스도교의 이해와 세계 선교를 위항 근본적인 요소이다.

선교학 연구 -그리고 일반 신학 연구- 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전체적 시각을 잃은 채 대부분 개별 논제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어떤 개별 논제도 그것 자체로는 복음화 활동의 진정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없다. 참으로 절대적인 것이 되려면 빈약해지고 왜곡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모든 본질적 요소에 대한 관점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현대의 복음 선교」, 17항 참조) 그리고 이것은 신학적 이해와 복음화 실천이 아직 체계적이고 조화적인 통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2. 종말론과 그리스도교

라칭거 교수는 그의 저서 「종말론, 죽음과 영원한 생명」(Eschatologie, Tod und ewiges Leben) 제1장에서, 종말론 없이 그리스도교는 순진하게 현실의 대용물로서 수용될 수 있는 경건한 말들을 반복적으로 외우는 것으로 격하될 것이라며 종말론적 차원에서 그러한 본질적 요소들을 보았던 가장 중요한 신학자들을 검토하면서 이 주제에 대한 지난 세기의 전반적인 신학적 성찰을 소개했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몇몇은 그리스도교의 위기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메시지 축을 현재로 옮기고, 거기에 집중하면서 그래서 미래의 자신들을 박탈하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 운명은 오늘날 긴급한 논쟁이 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방법에서 다양한 민감도로 논쟁이 되고 있다.
서양은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가치관의 위기로 고통받고 있다. 사회 정치적 사건들, 부정한 경제, 인간성과 개별 유럽인의 인간성이 함께 진리를 극적 모색하는 중이며, 그 미래에 몇 가지 희망을 갖기 위해 거기에 매달릴 것이다. “아침 여명에 호롱불을 비추는” 인간의 모습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간 가정으로부터 하느님을 추방한 독일 철학자가 예언적으로 예감한 “나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는 이 소리는 인류의 가장 심각한 비극을 드러낸다. 하느님의 소멸 또는 그분을 환대하기 거부함으로써 인류는 더 이상 견고한 접촉점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공허와 무가치 속에서 영원히 흔들거린다. 진리 없는 자유 그 자체는 모든 인류 존재의 기본적 가치를 그렇게 추구하고 사랑했었지만 무가치에 매달리고, 고독과 싸우게 되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추측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가치 자체들은 본질이 없고, 모든 개인과 공동체들은 그들 자신의 기준이 되고, 편의에 따라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사악한 지를 결정한다. 결과는 각 시대가 부분적 절대 가치들을 만들고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분리시키는 분리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하느님을 죽이면, 사람은 살아있는 하느님의 이미지인 인간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사목 헌장에서 “실제로,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 안에서만 참으로 인간의 신비가 밝혀진다.”(22항)라고 하느님에 대한 질문으로 일치된 인간에 대한 질문에 따라 확인하였다.
이 포스트모던 시기에 인류는 불안하게 미래를 찾고, 의미를 모색하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조건들의 억압받는 상황을 바라보면 현대 인류는 미래를 위한 어떠한 희망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식료품, 교육, 의료진 등 필수적 요건에 접근하지도 못하는 수억의 인간들은 생존의 가장자리에서 살고 있다. 부자 국가들과 빈자 국가들의 간격 차가 넓은 것은 이 지구의 생산물이 불공정하게 분배되고, 그래서 세계의 20% 인구가 세계의 부 80%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 집단은 인구가 세 번째로 큰 대륙으로부터 광대한 새로운 피난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전쟁들이 지배에 대한 갈증과 종교적, 문화적 차별, 끊임없는 인종 차별로 일어나고 있다. 기본적 인권 부정이 확산되었고, 어떤 사회에서는 낮은 신분과 빈자들, 무방비 상태와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결과로 확산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도시 집중화는 인권 하락이 가장 태연스럽게 드러나는 대도시들을 창출하고 있다.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지키기 위하여 가끔씩 근본주의에 도움을 청하는 종교들과 비신자들이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도전들은 그리스도교의 의미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다가올 하느님의 왕국과 관련되며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마지막 분석에도 관련된다. 요한 제자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 여쭤봐야 하다. 당신께서 오셔야 할 분이십니까? 아니면 우리는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오늘날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인류에게 미래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고 실현하신 하느님의 왕국은 무엇이며 언제 오는가? 복음 선포가 제안한 미래는 어떤 것인가? 하느님의 왕국과 인류의 역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 이러한 인간 역사와 모든 개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복음화는 무엇을 요구했으며 하느님의 계획은 완성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메시지 안에 포함된 구원의 본질, 따라서 교회의 본성과 그의 복음화하는 선교를 이해하게 된다.
이 강의는 하느님의 신비와 인류 역사의 비춰본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3. 왜 ‘종말론과 선교’ 강의인가?

복음화의 주제는 공의회 기간 동안 바오로 6세 교황이 던진 진심어린 질문에 되돌아가게 한다. “교회, 너희는 누구이냐? 무엇이 세상에서 하는 너의 선교이냐?” 그리고 무엇이 신학적 세계와 교회의 모든 힘, 특히 미개척 영역에 있는 그들을 계속적이고 고통스런 탐색으로 이끌었는가. 사실 모든 대륙의 지역 교회들은 그들의 선교 명령에 대한 한계와 그 본성을 계속 성찰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라는 것이 새롭게 명백하다면, 어떤 복음화가 구성될 수 있는지는 명백하게 똑같지 않다.
신학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리스도교와 교회를 토착화하고, 인류와 대화와 연대를 나누는 데 복음화 선교를 전하고 이해하는 필요는 쉽게 혼합되지 않는 최근의 사상들과 선교의 실천을 제공하였고, 사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편에는 반대편을 감추고 있다. 왕국-그리스도-교회-세상의 관련성,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토착화, 명백한 선포와 대화의 필요성, 종교 자유와 개종, 그리스도의 구원 중개의 유일성과 보편성, 다른 종교의 구원 가치는 아직도 신학적 차원에서 만족할 만한 통합을 발견하지 못했다. 문제는 모든 논증의 진리가 개별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다른 것에 조화되고, 그 어떤 절대성을 만드는 것을 피하면서, 복음화 활동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자체의 특성마저 배신하고, 파괴하며 궁색하게 만드는 심각한 결과에 있다. 이것이 어떤 경향의 강의인지를 이러한 단순한 원칙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왕국을 선포하고 실현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인간 역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셨고, 그 가운데 교회는 온전히 교회의 복음화 선교를 완성하려고 들어왔다. 선교 활동은 이러한 개념에서 확실해진다. 왕국의 도래를 위해 일하며 증거를 보여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이고 세계 안에서 세계를 위한 선교이지만 세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7,16 참조)
1. 예수님 시대에, 사실 야훼의 백성은 우주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변화의 관점에서 구원을 기다렸다. 예수님 유혹은 이러한 기대들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다. 사막에서 택한 빵, 감동적인 징표와 기적들, 전 세계를 덮는 정치적 힘. 사막에서 메시아 유혹 -인간적 기대의 메시아- 은 소비주의의 약속과 권력으로 정의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유혹과 관련된 복음의 구절들을 주의 깊게 연구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유다인들이 어떻게 인류를 일반적으로 표사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을 위한 구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그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정치적 선포는 이러한 자세와 약속으로 육성된 것이다.(요셉 라칭거, 위와 같은 책, 61면)
2. 왕국은 단지 예수님 자신이다. 그분 안에 하느님께서 세계의 운명을 그분 손안에 쥐어주셨다. 하느님 왕국은 하나의 사건이다. 예수님의 행동, 말씀과 고통은 인간의 삶에 그렇게 무거운 무게를 제거하는 힘을 압도한다. 왕국의 중심점은 계획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인격, 예수님 그리스도이시다.
3. 종말론이란 말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의 구원을 목표로 삼으며 보편적이다. 종말의 서곡으로서 이방인들 시대는 복음적 전통의 임의적 요소는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현실적 본성을 타고났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써 모두에게 제공되고 요망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의 선교 특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4. 구원은 금액으로 지불되는 방법인 표면적 요소로서 부여되지 않는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개인을 온전히 포함한다. 은총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애매한 자신의 운명에서 인간은 하느님 계획의 능동적 주체이고, 그것은 그가 살아있는 시간 동안 운명과 그 미래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그 자신에게 인간은 진정한 주체이지만 자신의 자력과 힘으로써 하느님의 왕국을 실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항상 선물이고 사랑이다. 단지 사랑하기 때문에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워크숍에서 에르네스트 블로크는 이 세상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위와 같은 책, 66면) 희망은 사랑이 있는 곳에만 존재한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 죽음을 승리한 이래 인간은 참으로 천상 예루살렘에서 육체의 부활로써 완벽해질 수 있는 생명의 영원한 원천과 충만함을 바랄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하느님 왕국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모든 지체들을 구원하고, 그들과 함께 우주 전체가 구원될 때 충만해지고 완성될 것이다.
이 강의는 교회의 복음화 선교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기획되었다.


교황청전교연맹
사무총장 비토 델 프레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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