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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전교기구의 역할

등록일

2008.04.17

조회수

2,512

친교에 봉사하는 교황청전교기구

교황청전교기구 아일랜드지부장 에드워드 그램스 신부

1. 한 마음과 한 정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일치와 친교의 선물을 소중히 간직했다. 그들은 형제애와 자매애, 우정에 충실하였다.(사도 2,42 참조) 그들은 필요한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사도 4,35 참조)
세기가 흐르면서, 많은 개별 교회들은 보편 교회로서 세상 끝까지 확장되고 성장하게 되었다. 오래된 교회들의 성장처럼 거기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교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자신 안에 갇혀 그들의 선교 노력을 소홀히 할 위험이 있습니다.”(베네딕토 16세, 2007년 전교주일 교황 담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친교와 협력의 중요성, 특히 복음화의 의무를 강조하였다. 특별한 용어로서 친교는 각 교회가 “다른 모든 교회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의 필요를 서로 알리고 자기 것을 서로 나누는”(선교활동교령, 38항) 것이다.

2. 친교의 영성

일치된 친교의 영성은 교회 내에서 성장되어야 한다.(루빅, Essential Writings, 2006년, 27-32면 참조) 하느님과 함께하는 개인의 직접적인 관계의 탁월함은 그분의 형제자매들이 함께하는 개별적 관계의 공동체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이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가가는 개개인은 그리스도를 따른다. 세상 사람들이 믿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유일한 소망은 성부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17,21 참조)
대희년 폐막에 보낸 사도 서한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친교의 영성을 장려할 필요에 대해서 “친교는 영원하신 성부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그 사랑의 결실이며 증거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어지며, 우리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합니다.”(요한 바오로 2세, 「새 천년기」, 42항)라고 썼다.
교회는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가 될 수 있다.(위의 책, 43항) 친교의 영성은 우리를 그리스도 신비체의 깊은 일치에서 신앙으로 형제자매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기쁨과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바람을 느껴 알며 그들의 요구에 마음을 쓰고, 그들과 깊고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위와 같음.)
친교의 영성은 우리가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양보하며’, ‘남의 짐을 져 주고’(갈라 6,2), 언제까지나 우리를 따라 다니면서 경쟁심과 출세욕, 불신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기적인 유혹을 물리칠 줄”(위와 같음.) 알게 한다. 교황님은 “친교는 모든 교회 생활 구조 안에서 날마다 모든 차원에서 계발되고 확대되어야 합니다.”(위의 책, 45항)라고 권고했다.

3. 사랑의 공동체적 차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회란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이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그는 사랑의 공동체적 차원에 주목하였다. “이웃 사랑은 무엇보다도 신자 개개인의 본분이지만, 또한 온 교회 공동체의 본분입니다. 이는 지역 공동체에서 개별 교회, 보편 교회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차원에서 그러합니다.”(베네딕토 16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0항)
각 개인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다른 개인의 필요에 다가가는 것처럼 또한 공동체들도 다른 공동체들에게, 본당들은 다른 본당들에게, 교구들은 다른 교구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음식만큼 하느님에 대해서도 “내가 배고팠을 때”라는 소리침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신자들에게 선교는 더 이상 단순히 복음화 활동에 협력하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고 공동 책임자로 인식하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 책임 의식과 더불어 공동체들 간의 친교가 성숙되고 오늘날 복음화에 필요한 수단들의 활용뿐만 아니라 인력과 관련해서도 상호 협력이 증가하게 됩니다.”(베네딕토 16세, 2007년 전교주일 교황 담화)


4. 교황청전교기구의 역할

친교는 그것이 진실하다면 협력의 결과이다. 모든 교회들의 선교 협력을 위한 “첫 자리”(선교 교령, 38항)이며, “이끄는 역할”(교회의 선교 사명, 84항), 그리고 “공식 기관”(요한 바오로 2세, 「착한 목자」, 91항)은 교황청전교기구이다. 전교기구들은 “모든 교회가 세계의 회심을 위하여”(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 사명」, 84항) 일치할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교회들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하여 개방된 자세를 가지고, 모든 종류의 지역주의, 배타주의, 자족주의를 배제하게 된다.”(위의 책, 85항) 이 기구들은 어떤 선교 원조 단체도 아니지만 선교 활동을 보조하는 교회의 공식 기구이다.
친교는 활력적인 실체이다. 관상에서 출발하는 친교는 우정으로 표현되고, 약속과 봉사를 이행한다. 하느님과 함께, 다른 이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기쁨과 고통도 함께 나눈다. 선교 협력은 교회들 간에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다.(Cooperatio Missionalis, 20항) 교회들은 그 자신들이 다른 교회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또한 동시에 선교에 임함으로써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참된 선물들은 기도, 희생 봉사, 인력 교환 그리고 물질적 도움 등이다. 친교는 교회들과 교구들을 그들이 친교를 나누는 다른 교회들과 교구들에게 다가가도록 인도한다. 어떤 교회도 홀로 있거나 자족할 수 없으며, 신비체의 깊은 일치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연결되어 있다.(요한 바오로 2세, 「새 천년기」, 46항)
교황청전교기구는 창의적인 은사에서 세워졌으며 교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 기구들은 “교회에 베풀어진 성령의 은사”(교황청 전교기구 정관, 12항)이다. 이 기구들은 개별 교회들 간에 물질적 도움을 나누고, 기도와 고통의 희생적 봉사의 친교를 촉진한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라는 사실을”(베네딕토 16세, 2007년 전교주일 교황 담화) 잊지 말아야 하다.
친교를 나누는 개별 교회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그들의 은사를 나눈다.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지 않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을 다해 봉사할 따름이다.(베네딕토 16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5항) 어떤 교회도 전혀 받을 것일 없을 만큼 그렇게 부요하지 않고,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가난하지 않다.(Missio-Aachen, Your Salvation, 54면)
5. 사목적 관계

주교들은 “한 교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축성되었다.”(선교 교령, 38항) 그들은 “오늘날 복음화 활동의 추진에 절실히 필요한 교회들의 친교와 협력”(위와 같음.)에 동참해야 한다. 사제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위임하신 선교를 온전히 나누며, 그래서 그들의 관심이 자신들의 본당 또는 교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사제 생활 교령, 10항) 주교와 사제들은 그들 교구를 돕는 데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본당들과 교구들은 전교주일에 보편 교회의 선교 활동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회를 가진다. 적어도 일 년에 한번 선교를 위한 행사뿐만 아니라 친교에서 꽃이 핀 영적, 사목적 의무에도 호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개별 교회들은 각각 다른 교회들의 필요에 개방되고 관대해야 하며 자매결연의 목적으로 한 교회를 선택하는 것을 옳지 않다. 교황청전교기구만이 어려운 상황과 긴급한 요청이 있는 교회들을 특별히 고려하며, 보편 교회의 선교 활동을 위한 자금을 분배하는 데 공정함을 보장할 수 있다. 교구들끼리, 본당들끼리 맺는 자매결연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완전한 친교는 아니다. 자매결연이 연장될 때 사실상 이웃하는 본당이나 교구들과 분열되거나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된다. 무엇보다 특별 기획으로 전하는 전교주일 자금의 ‘재 할당’은 친교의 불공정과 불이익을 가져온다. 자매결연을 맺은 본당들 가운데 그 어느 쪽도 교황청전교기구에서 주최하는 세계 기금에 봉헌하는 교구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교주일은 모든 본당과 교구들이 그들의 선교 의무와 권리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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