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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선물' 50주년 국제대회 강연 5

등록일

2007.10.04

조회수

2,625

피데이 도눔 50주년 행사 국제대회 강연 5.

신생 교회들의 양성의 구조적 빈곤?
피데이도눔 출신들의 지원과 파견,
무엇을 해야 하는가?


헨리크 호세 대주교/ 교황청전교기구 총재


대회를 끝마치면서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신앙의 선물」의 원동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원동력은 동기와 방향의 두 지점, 두 극의 내부에서 전개됩니다. 첫 번째 극은 신앙입니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서 개별 선교사의 약속까지, 자신의 구체적 일상생활에서 동기는 동력이 되고 근거가 되는 힘입니다. 계속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면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선교사 자신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데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회칙, 「신앙의 선물」의 본문은 이중의 시각, 곧 신학적 성찰에서 발생한 동기와, 선교사가 약속한 기간과 환경의 전후 관계 인식에서 발생한 동기를 제공합니다. 곧,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지고 깨닫고 주어진 상황을 읽는 데 있습니다.

1. 하느님 섭리의 차원은 항상 신앙 없는 복음화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신앙의 선물과 함께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내려놓으신 비교할 수 없는 풍요는 무한한 무상의 동기들입니다. (……) 이 하느님 선물의 교환에서 우리는 주님께 마음의 존경 이외에, 하느님 진리의 놀라운 광채를 인간들 사이에 확산시키기 위한 우리의 열정이 아니라면 무엇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선교사로서 활동하는 첫 번째 동기는 넉넉히 받은 선물을 나누기 위해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너그러우심에 감사하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베푸는 태도가 표현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감사는 성경의 태도입니다. 예를 들면, 토비 12,6; 콜로 3,15) 선교는 무엇보다 진심어린 마음과 막중한 의무가 요구됩니다.
선교 임무의 다른 중요한 동기는 회칙, 「신비체」(Mystici corpori’)에서 발전된 교회에 대한 시각과 의식입니다. “우리의 죽을 유기체(육신)의 한 지체가 고통스럽다면, 그와 함께 다른 모든 지체들은 병든 지체들을 순수하게 돕기 위해 건강한 지체들을 제공합니다. 그와 같이 교회 안에서 각 지체들은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온 지체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서로 서로를 도우며, 서로 위로하기 위해 상호적으로 도웁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회의 연대는 그리스도의 고무적인 자비에 기초하였음을 강조하면서, 모든 선교사들에게 그리고 세계의 주교들에게 그와 같이 청원하였습니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도 유사한 가르침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는 누구든지 베드로에게 맡겨진 그 파견에 민감합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 16-18) 베드로 후계자를 통하여 개별화된 보편 선교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 모든 이들을 포함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선교 동기에 대한 또 다른 주제는 신학적 정점에 속하고, 신경의 구절 가운데서 확인하듯이 교회의 보편성에 해당합니다.

2. “선교사의 정신과 가톨릭 정신은 (……)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보편성은 참된 교회의 본질적 주석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가 세상의 모든 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바라면서, 교회의 보편성에 헌신하고 결속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 신자가 교회에 참으로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현대 문화가 지배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경고가 나타납니다. 교회에 대하여 말할 때, “어떤 것이든 자체 안에 폐쇄되고, 집단 이기주의로 지역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끄는 모든 형태는 무엇이나 그 자체 안에 은둔하는 생활로써 해로운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는 18년 후,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반복됩니다. “교회에 자신의 아들과 딸들을 기여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신 비오 12세의 말씀은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재확인됩니다.
“선교는 교회를 새롭게 하고, 신앙을 견고케 하고, 그리스도교의 정체를 확인하고, 새로운 열정과 자극을 주는 것이다. 신앙을 줌으로써 신앙이 견고해진다. 보편적 선교 열의의 진작은 그리스도교 백성들의 새로운 복음화에 영감과 자극을 줄 것이다.”
“선교 정신은 교회의 설립을 실현시키는 성령의 바람에서 그리스도인을 인정하는 신학적 가치 위에 기초합니다. 그와 같이 선교사의 소명과 선교사는 ‘신앙의 선물’ (Fidei Donum)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르침의 위험 없이, 회칙의 저자에게서 광범위하게 전개된 “선교사의 삼중 의무”는 성령의 열매이며, 인간 마음을 확장시키는 개별적 외향성과 드러냄으로 표현됩니다. 이 삼중의 의무는 기도, 자비, 각자의 선물로부터 형성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교기구를 거쳐서 교회에서 제공한 선교사의 활성화는 이러한 세 가지 선물, 방향 그리고 공동체적 그리고 개별적 성장의 윤곽에서 강조됐습니다. 선교 행위를 나타내는 “ad quo”라는 용어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하신 주님을 향한 열렬한 소망을 표현하는 선물 자체입니다. 이 선물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이 짧은 말씀 안에서 믿은 이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소명을 발견합니다.
선교사라는 선물은 오늘날 세상에서 자신의 활동과 필요성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인력과 자산의 자유로운 유통”이 세계화의 규범이 되고 교회의 보편성이 새롭게 개방될 때 접촉이 가능해집니다. 모든 교회에 대한 공동 책임의 능력은 신비체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숙에 합치되며 설립되었을 때(에페 4,13 참조) 개별 교회의 성숙함의 증거와 표징으로 여겨집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모든 세상에 사랑을 펼치시오.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온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 두 번째 정점으로, 동기의 기초이기도 한 이러한 인류학은 세계의 상황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항상 주님의 연민어린 시선과 같이 복음에서 자주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4-56)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제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3-17)
또한 교회 교도권의 다양한 문헌들은 온 인류에 대한 각 대륙, 국가, 지역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 분석을 제공합니다. 때때로 개인을 환자, 아이들, 여성, 전문가, 젊은이 등으로 구분하여 그들의 존재론적 상황을 전합니다.
또 실제 삶의 빛과 그림자인 이중의 견해를 담고 있는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빛과 고통(Luctus et Angor)인 현 세상에서 교회법의 방법론을 따랐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첫 번째는 생활환경을 가치 있게 바라보고 보호하는 것이고, 시대의 표징들을 지적으로 읽을 줄 알고, 주의 깊고 민첩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4. 외부 선교의 양성

각 교회는,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교회도 ‘만민 선교’를 향한 자체의 선교 조직과 적합한 준비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 몇 가지 실천적인 제안들이 있습니다.
“간접” 준비는 양성 기관과 본당의 사목 방향의 차원에서 평생 교육과 사목 활동을 통해서 전개시킬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교황청전교연맹의 활동 조직에 합류하는 것이 더 유익한데, 이 역할은 지역의 선교 사명을 발전시키고 자극하기도 합니다. 전교연맹은 전교기구 안의 다른 기구들의 경험에 기초하여 교구와 본당 신자들의 필요에 적합하고, 교육적이며, 교리적인 여정을 기획할 수 있습니다.
소신학생들, 수련자들과 대신학생들이 있는 양성 기관들은 선교학의 내용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신학생들이 있는 대신학교 내의 선교학 강의들은 모두에게 의무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의무는 선교 정신의 입문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의 역동성의 상실로 자주 소홀히 취급되고 있습니다.

“직접” 준비는 다음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 선교사 성소 판별과 선교 후보자들의 올바른 선택.
- 외국어 과정의 조직적 준비(필요성에 따라서).
- 파견될 국가들의 현실적 문제들, 지리, 역사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
- 구체적 선교를 위한 필수 비품의 획득, 예방주사, 의료 검진 등 실천적 문제들.
- 파견될 교구의 주교와 계약의 서명과 준비, 선교 지역 교구에 선교 책임자나 장상들의 사전 방문.

5. 파견하는 교회의 선교사 기초 조직
선교사의 출발 후, 후원 구조 역할은 그 존재와 기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특성을 바꿔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파견된 선교사는 출신 교회와 함께 항상 연대감을 느끼고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후원 활동에는 적어도 세 가지 분야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후원은 소속 교구와 본당에서, 수도 공동체에서, 가정에서 특히 묵상과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둘째 후원은 필수적이고 물질적인 것입니다. 교구 사제는 수도회 가족이 아니라, 출신 본당 신자들의 후원을 받아야 합니다. 도움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연락, 모금, 전례 특성의 방법, 기술, 비품 전달, 등 기타 이차적 필수품입니다.
셋째 후원은 기획, 선교사의 일상생활, 도움에 따른 활성화의 정보 교환입니다.
출신 교구와 본당의 역할은 선교사들의 가족을 특별히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족에게서, 특히 부모에게서 떨어짐은 많은 선교사들에게 힘든 시련이 되고, 선교 활동을 하는 많은 여성을 괴롭히며, 그들의 귀국을 서두르게 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6. 최근 십여 년부터 신생 교회들의 빠른 성장에 대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남-남구, 곧 제삼 세계의 교회들 간에 증가된 선교사들의 수로 드러납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 선교사들의 새로운 흐름 중의 하나는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사이에서 순환되는 것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이러한 흐름은 벌써 자리를 잡았고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동기도 주목해 봅시다. 북구 국가들, 유럽, 북아메리카에 도착하여 자리 잡기 위해서 자신들의 국가를 떠나는 수많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경우들도 다뤄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발생하는 실제적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겠습니다.
세상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선교 수도회들은 이에 대해 풍요롭고 오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교 후보자들의 특별 양성 기관들에서 제공하는 전형들을 활용하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요청들에 부합하여 신생 교회들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양성 센터들을 설립하였습니다.
선교사를 받아들이는 국가들은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 아프리카언어센터(CELA)를 설립하고 지역 문화와 지역 역사처럼 지역 언어의 강의들을 발전시킨 ‘백인 사제회’(Padri Bianchi)의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된 다른 문제는 유럽과 미국에서 사목하기 위하여 젊은 교회들의 수많은 사제들이 출국하는 일입니다. 자발적인 이 움직임은 때때로 공동 규범과 장상들의 감독에서 벗어납니다. 다른 한편으로 몇몇 사제들은 사제성소의 부족으로 고통 받는 오래된 교회들을 돕기 위해, 또는 이주민들의 사목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파견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동시에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인 전통 국가들에서 많은 봉사를 제공하는 수많은 수도회 공동체들도 있습니다.
성공적인 선교의 첫 번째 조건은 곧 언어 습득으로 식민지시대 후기 국가들을 비롯한, 유럽 또는 북아메리카에서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노인들은 나이 때문에 사목자가 자신의 억양이 섞인 유럽 언어를 말할 때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고, 사목자는 본당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나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캐나다 영어권에서는 늘 낯선 언어입니다!
북구 국가들에서 사목하는 데 필요한 또 다른 조건은 그들 국가들의 복음화 역사에 대한 분명한 지식,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최근 그들의 역사입니다. 세속화, 교회에 대한 열정 부족, 가족의 해체, 성소 부족, 등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현재 상황을 수용하기 전에 지역 사제들과 통합하며, 생생하고 강한 힘으로 더 나은 협력의 상황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합니다. 사목적 배려에는 관대하고, 상대적으로 물질적 재산에는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교사의 이러한 태도는 인간 본성이 하나이며 유일하다는 것을 신속히 알게 합니다. 차이점은 살아온 문화에서 옵니다. 여기서 배워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자연 속에 펼쳐져 있는” 선교 지역 국가들에서 온 사제들의 상황을 한 항목에서 별도로 다룰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는 주교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주교 또는 주임 신부는 합법적 장상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제들에게 사목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상황은 교회들 간 모든 친교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사제들을 “피데이도눔 사제들”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북구 지역에서 사목하기 위해 남구 지역에서 온 선교사들에게는 상황에 따른(in situ) 준비가 항상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환영’(Welcome)이라는 특별 제목으로 강의를 주최합니다. 이 강의 동안 국가의 특성, 전통, 정치 상황, 국법, 사목적 구조 등을 설명합니다. 개입 단계도 예상합니다.
출신 국가의 외부 사제 봉사는 계약으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개방된 제안) 계약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가) 당사자들의 정체성
- 파견하는 주교
- 수용하는 주교

나) 선교사의 정체성
- 시민권
- 교회의 신원

다) 계약의 목적
- 근로의 형태(사목, 본당, 교육, 기타)
- 근로 장소
- 근로 기간(예, 5년)

라) 선교 준비
- 파견하는 주교 :
언어 강의,
특별 준비(선교학)
- 수용하는 주교 :
지역 언어 강의,
실천 단계 - 형태, 장소, 기간

마) 재정적 의무 :
- 여행비용을 지불하는 이
- 강의비용을 지불하는 이
- 보건 이전 비용을 지불하는 이
- 미사 지향을 보증하는 이 - 생활비를 지불하는 이
- 운송 방법을 주관하는 이

바) 분쟁 상황의 규정
- 직접 장상의 역할
- 최고 장상의 역할
- 항의 절차

사) 휴가와 안식년(일시적)
- 지역의 휴가
- 출신 국가의 휴가
- 계속 교육의 기간 : 지적/ 영적

아) 상호 승인의 계약 해지
- 해지의 동기
- 해지의 절차
- 통보

자) 계약 기간

차) 서명 날짜 장소

위에서 제시하였듯이 계약은 부과된 수정과 함께 의무적이어야 합니다.
파견하는 주교들이 젊은 교회들을 방문하고 남구 주교들과 함께 개인적 접촉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물로서의 피데이도눔은 전후 관계가 부족하게 됩니다.

7. 평신도 선교사들의 특성

평신도 선교사들은 늘 세상에서 가장 많습니다. 새로운 카리스마 운동들은 선교에 자신들의 삶을 몇 년 동안 봉헌하기 바라는 청소년들과 성인들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확고함이 사제들과 수도자들에 비해 훨씬 더 취약하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경험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학적, 선교적 준비도 미흡하고 불충분합니다. 파견하는 국가는 선교지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본직 복귀를 보증해 주고, 건강 보험과 지속적인 일상생활의 보험을 보증해 주어야 합니다.
수용하는 국가는 그들에게 확실하게 신분, 보상, 교계적 소속의 분명한 틀 등을 확인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서명된 계약은 교회법에서 적게 배치된 평신도들에게 더 필요합니다.
이러한 범위에서 선교사들의 전문적 측면은 교회와 관련해서 더욱 중요해집니다. 평신도들은 학교,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의 교수들이거나, 농업 전문가, 건축가, 기술자, 인쇄 기술자, 등 개발도상 국가들에게 필요한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 있습니다. 지역민들에게 양성 과정을 제공하고 그들의 후임자를 준비시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8. 피데이도눔 선교사들

선교사 성소의 정의는 선교 교령에서 소개하듯이, 온 교회에 속한 복음화의 임무를 확인하는 모든 형태들을 내포하고 완성합니다. (선교 교령, 23항 참조)
선교사에 대하여 말하면서 선교 교령은 다음과 같이 확인합니다. “실제로, 적합한 천성을 타고난 알맞은 자질과 재능을 지니고 선교 임무를 받아들이도록 준비된 이들은 본토인이든 외국인이든, 사제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다 특별한 성소를 받았다.”(위와 같음.)

그러므로 이것이 선교사를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 성소
- 타고난 적합한 자질
- 천부적이고 유능한 재능
- 선교 활동을 완성하려는 준비 자세
이러한 요소들은 당연히 한 선교사의 파견과 수용의 책임은 판단의 단계와 적합한 양성이라는 이중의 단계에서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 ‘선택’에 관하여, 부름 받지 않은 선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한 성소로 파견하는 이러한 부름은 하느님에게서 나오고 모든 것의 근본이 됩니다. 부름 받지 않은 선교사는 불행한 결말을 가져오고 비난을 받습니다.
봉헌생활에서 특별 성소와 유사한 점을 봅시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우에 임명은(한 부름은) 주교든, 수도회 장상이든 교회법적으로 결정적인 권한에서 발생하고 양성됩니다.
선교사 성소는 다양한 형태로 확인됩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 그리스도인 생활의 초기부터 후보자의 여정을 분석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의 신학교 과정에서 기초 양성과 계속 양성의 품성.
- 그의 깊은 동기를 인식한다. 신앙에 뿌리를 내린 것인가? 아닌가? (외국 정취 모색, 물질적 동기, 책임 회피 등등)
- 장상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 자발적이며 신뢰감을 주는가, 아니면 후보자가 예비 계약의 조건 목록을 거부하는가? (“사람을 자기를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하여, 혈육에 안주하지 않고 복음 활동에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갈라 1,16 참조) 그러나 성령께서 재촉하시고 힘을 북돋아 주시지 않으면 결코 이러한 응답을 할 수 없다.”(선교 교령, 24항)

한 후보자의 정체성과 본질적 자세의 검증은 그의 선물과 재능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 후보자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은 결정된 선교 임무를 점검하는 데 의무적이다.
- 후보자의 지적 능력 가운데 우선적인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능력이다.
- 후보자의 심리측면에서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 대한 열린 사회성과 균형이 있어야 한다.
- 후보자의 가족과 분리이다.
- 모순된 동기들의 부재: 장상들의 자립, 모험 추구, 재정적 이유 등.

9. 후보자가 원하는 선상에서 제시된 요청은 선교 임무가 잘 수행되게 하는 데 중요합니다.
선교사는 “실제로 신속하게 일에 착수하고 그 일을 꾸준히 추진하며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내와 용기로 고독과 피로와 보람 없는 노고를 견디어 가야 한다. 열린 생각과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다른 민족들의 풍습과 변화하는 상황에 과감히 적응하여야 한다.”(선교 교령, 25항) 이와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선교 교령은 선교사로 사는데 요구되는 다른 여러 조건들을 제시합니다.
책임 장상들이 선교사들을 파견할 때는 적합하지 않은 후보자들이 아닌 훌륭한 후보자들을 뽑는 긍정적 선택이어야 합니다. 어떤 이가 교구에서 또는 수도 공동체에서 동료들, 순명, 교회 규율 등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피해가고 싶은 큰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선교가 “그에게 수업”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은 거짓입니다. 그러한 선교사는 선교 지역의 새로운 장상들과 동료들에게 무거운 십자가가 됩니다.
또한 좋은 후보자들을 찾았지만 적합하고, 신중하고, 조직적인 준비도 없이 파견한다면 이것도 후보자와 교회를 고통스럽게 하는 잘못이 됩니다. 여기에 모두의 책임이 큽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교사는 사제든 수사 수녀든 평신도든 각자 자기 신분에 알맞게 준비 교육을 받아 미래 활동의 요구를 감당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선교 교령, 26항)
적어도 16세기부터, 그 다음 19세기 동안,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우세했던 선교사의 모델은 식민주의가 지배했던 세상에 적합했습니다.
선교사가 어딘가에 도착하면 흔히 본국의, 유럽 관리의 대표단이 됩니다. 당연히 복음을 전파하고, 당연히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개발과 교육을 담당하며, 당연히 본당, 학교, 병원을 세웁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명과 문화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수출업자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면입니다. 선교사는 출신 국가에서 오는 물질적 운송물이나 식민 행정의 공급 물량을 배부합니다. 항상 이러한 원조에는 어떠한 어려움도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인류복음화성 소속 지역에 있는 젊은 교회들 간에 선교사들 교환은 크게 다릅니다. 선교사는 과거에 존재했던 본부의 지원이 부족합니다. 그의 조국은 상대적으로 가난합니다. 그를 선교에 파견한 교회도 인적 자원은 풍부하지만 물질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선교사는 무엇보다 자신의 풍요로운 창의력, 독창력과 활동력을 지니고 도착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수용하는 국가를 존중하고, 자신의 문화와 문명에 대한 “우월감”은 없습니다.

10. 그러므로 이러한 확인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끌어냅니다.

1) 지역 장상들(특히 주교)이 맡긴 선교를 실천하고 돕기 위하여, 새로운 세상의 선교사는 조직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교황청전교기구와 함께, 또 다른 단체나 출신 지역의 장상과 일치하며 선교 지원의 일반적 조직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 자급자족 계획을 세우고 발전시키면서, 지역 사목자들과, 자신과 함께 파견된 동료들과 협력하고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 전체적으로 지역 교구와 본당 구조 내에 합체될 수 있고, 합체되어야 한다.
2) 두 번째 결론은 토착화의 방법에서 자신의 준비와 포기와 관련됩니다.
- 지역 언어의 완전한 지식은 성공의 열쇠이다. 이를 통해 선교사는 지역민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 그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선교지역민에 대한 인종 심리학, 관습, 습관, 풍습에 대한 지역 문화와 역사의 깊은 지식은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강생의 선교사 영성이다. 어렵고 의무적이지만 아름답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 그리고 그 백성에 대한 연민을 가지십시오. 모든 인간은 하늘나라에서 일치하며,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일치의 영광과 찬미를 올릴 것입니다.(교황청전교연맹의 수호자, V. 팔로티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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